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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브리엘 메르카도

 

안녕하세요! 오늘은 라리가 세비야 fc 소속의 아르헨티나의 수비수 가브리엘 메르카도 선수에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름 가브리엘 메르카도 Gabriel Iván Mercado
출생일 1987년 3월 18일
출생지 아르헨티나, 푸에르토 마드린
181 cm
포지션 라이트 백
현 소속팀 세비야 FC
등번호 25
청소년 클럽 기록 라싱 클루브
클럽 기록 2006-2010  라싱 클루브
2010-2012  에스투디안테스 LP 
2012-2010  리버 플레이트 
2012-2016  세비야
2016-
국가대표팀 기록 아르헨티나 23경기 4득점

 

가브리엘 이반 메르카도(스페인어: Gabriel Iván Mercado, 1987년 3월 18일 ~ )는 아르헨티나의 축구 선수이다. 포지션은 라이트 백과 센터 백이 가능한 수비수이고, 현재 스페인 라리가의 세비야 FC 소속이다.

2007년 3월 2일의 뉴얼스 올드 보이스전에서 데뷔했고, 2016년 8월 4일 세비야 FC와 3년 계약했다. 2018년 6월 30일 프랑스와의 2018년 FIFA 월드컵 16강전에서 후반전 3분만에 2-1로 달아나는 역전골을 기록했지만, 다시 3-4로 재역전당해 16강전에서 탈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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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만단다

I LOVE SOCCER 2019. 4. 28. 14:22

스티브 만단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마르세유와 프랑스 국가대표로 활약하고있는 프랑스의 골키퍼 스티브 만단다 선수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름 스티브 만단다 Steve Mandanda
출생일 1985년 3월 28일
출생지 자이르 킨샤사
185cm
포지션 골키퍼
현 소속팀 마르세유
등번호 30
청소년 클럽 기록 2001–2005 르아브르
클럽 기록 2005–2008  르아브르 
2007–2008  → 마르세유 (임대) 
2008–2016  마르세유 
2016–2017  크리스털 팰리스 
2017–마르세유
국가대표팀 기록 프랑스 26경기 출장

 

 

스테브 만단다(Steve Mandanda, 1985년 3월 28일 자이르 킨샤사 ~ ) 는 프랑스의 축구 선수로, 리그 1의 마르세유에서 골키퍼로 활약하고 있다. 망당다는 프랑스 국가대표팀 일원으로 UEFA 유로 2008과 2010년 FIFA 월드컵, 두 차례의 국가대항전에 참가하였다

르아브르 AC
2005년 8월, 만단다는 르아브르 AC 소속으로 리그 데뷔전을 치루었고, 그가 출전한 첫 네 경기 동안 1골만 실점하였다. 그는 2005-06 시즌에 30번, 2006-07 시즌에 37번 출장하였고, 그의 실력은 다른 주요 클럽들의 주목을 받았다. 2007-08 시즌에 애스턴 빌라 FC와의 트라이얼에 실패한 후,[1] 2007년 여름에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로 이적하였다.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마르세유에서의 첫 시즌, 만단다는 주전 세드릭 카라소의 백업으로만 고려되었다. 그러나, 카라소가 무릎 부상으로 6달 아웃이 확정되자, 망당다는 리그 1, UEFA 챔피언스리그, UEFA 컵 경기에서 주전으로 출장할 수 있게 되었다.

2008년 3월 5일, 망당다는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와 4년 영구계약을 체결하였다. 그러나, 그는 인상적인 활약으로 잉글랜드의 맨체스터 시티 FC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이탈리아의 AC 밀란으로부터 이적 제안을 받았다.

국가대표팀 경력
만단다는 프랑스의 U-21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2006년 UEFA U-21 챔피언쉽을 우승하였다.

2007년에 망당다는 처음으로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었다.[

그는 프랑스 B팀으로 2008년 2월 5일에 콩고 민주 공화국과의 경기에 출전하였고, 하프타임에 교체되었고, 그의 동생 파르페 망당다가 콩고 민주 공화국 국가대표 일원으로 출전하였다. 그는 2008년 5월 27일에 에콰도르와의 UEFA 유로 2008을 앞둔 친선경기에서 데뷔하였고, 프랑스는 2-0으로 승리하였다. 그는 UEFA 유로 2008 기간동안 프랑스의 써드 골키퍼로 활약했던 세바스티앵 프레이와 교체되어 출전하였다.

그는 2010년 FIFA 월드컵 예선 기간동안 주전 골키퍼로 출전하였고, 2008년 9월 6일에 오스트리아와의 2010년 FIFA 월드컵 예선전에서 메이저대회 예선전 데뷔를 하였다. 그러나, 그는 2009년 여름을 기점으로, 레이몽 도메네크 감독은 올랭피크 리옹의 휴고 로리를 주전으로 기용하기 시작하였고, 결국 주전자리에서 밀려났다. 망당다는 2010년 FIFA 월드컵의 프랑스 23인 최종 엔트리에 포함되었으나, 단 한경기도 출장하지 못하였다.

사생활
스테브 망당다는 세명의 동생이 있는데, 이들 모두 골키퍼로 활약하고 있다. 파르페 망당다는 AS 보베와즈 소속으로 콩고 민주 공화국 국가대표팀 일원이고, 리피는 SM 칸과 프랑스 U-16 국가대표팀의 일원이며, 에베르는 뤼시사노 생모르 (Lusitanos Saint-Maur) 소속이다.[3] 그는 그의 가족과 함께 그가 거주하는 마르세유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한다. 그는 그의 조국 콩고 민주 공화국 대신에 프랑스를 택한 것에 대해서 "프렌치" (Frenchie) 라는 별명을 친척들로부터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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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마냐 마티치

I LOVE SOCCER 2019. 4. 28. 13:02

네마냐 마티치

 

안녕하세요! 오늘은 세르비아의 국가대표 축구선수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활약중인 미드필더 네마냐 마티치 선수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름 네마냐 마티치 Немања Матић Nemanja Matić
출생일 1988년 8월 1일
출생지 유고슬라비아 샤바츠
194 cm
포지션 수비형 미드필더
현 소속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등번호 31
청소년 클럽 기록 1993-1997  브렐로 
1997-2000  오브레노바츠 1905 
2000-2004  츠르베나 즈베즈다
2004  파르티잔 
2004-2005 FK 예딘츠보 Ub
클럽 기록 2005-2007  콜루바라 
2007-2009  코시체 
2009-2011  첼시 
2010-2011  → 피테서 (임대) 
2011-2014  벤피카 
2014-2017  첼시 
2017-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국가대표팀 기록 세르비아 46경기 출장 2득점 

 

 

 

2004년, 16세의 나이로 마티치는 FK 콜루바라의 1군에 합류하였다. 마티치는 3시즌동안 16경기에 출장하였다. 그는 베오그라드 세르비아 리그 (3부리그) 에서의 인상적인 활약 후, 그는 슬로바키아 수페르리가의 MFK 코시체로 이적하였다. 그는 67번의 슬로바키아 리그 경기에 참여하여 4골을 기록하였고, 소속팀이 2008-09 시즌을 4위로 마감하는데 공을 세웠다. 그는 세넥의 NTC 세넥에서 벌어진 슬로박 컵 결승전에서도 FC 페트르잘카 1898를 꺾고 소속팀이 우승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코시체는 3-1로 승리하여 UEFA 유로파리그의 첫 시즌에 우승할 수 있게 되었다.

네마냐는 이중국적자이다. 그는 세르비아 출신임에 따라 세르비아 시민권을 가지고 있고, 나중에 슬로바키아 시민권도 획득하였다. 2008-09 시즌 프리미어리그 트라이얼을 거친 뒤 미들즈브러 FC가 가장 먼저 그를 영입하였다. 그러나, 트라이얼은 덴마크전을 앞둔 세르비아 국가대표팀의 차출로 인해 중단되었다. 2009년 여름, 마티치가 프리미어리그의 토트넘 홋스퍼 FC나 첼시 FC로 이적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첼시 FC
2009년 8월 18일, 마티치는 £1.5M의 가격에 첼시 FC와 4년 계약을 체결하였다. 그는 24번 유니폼을 받았지만, 그는 UEFA U-21 챔피언쉽에서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데뷔가 연기되었다. 그는 2009년 9월 23일, 1-0 승리로 끝난 퀸즈 파크 레인저스 FC와의 리그 컵 경기에서 벤치를 지켰다. 마티치는 2009년 11월 21일, 울버햄프턴 원더러스 FC전에서 69분 플로랑 말루다와 교체 투입되어 데뷔전을 치루었고, 팀은 4-0 승리를 거두었다.그는 위건 애슬레틱 FC와의 2009-10시즌 리그 마지막 경기에 출장하였고, 이날 첼시는 8-0로 크게 이겨 프리미어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피테서
2010년 8월 23일, 마티치는 첼시 동료 슬로보단 라이코비치와 마테이 델라치와 함께 에레디비시의 피테서로 1년동안 임대되었다

벤피카
2011년에는 첼시가 다비드 루이스를 영입하면서 그 대가로 벤피카로 팀을 옮겼다.

첼시로의 복귀
1월 겨울이적시장을 통해 첼시로 다시 복귀하였다. 복귀 후 첫 선발인 fa컵 스토크 시티 FC전에서는 팀의 1:0 무실점 승리를 이끌어내는 활약을 펼치며 좋은 신호탄을 올렸다. 그리고 그는 2014년 2월 4일 맨체스터 시티와의 리그 경기에서 다비드 루이스와 더블 볼란치를 이뤘는데 엄청난 활동량과 피지컬, 높이(다비드 루이스 189cm,마티치 194cm)로 상대 맨시티의 최고 선수 야야 투레를 완벽히 봉쇄하면서 밀리지 않는 중원 싸움을 보여주었다. 리그 레이스에 중요한 결전인 이 맞대결 mom으로 선정 되면서 마티치라는 이름 세 글자를 세상에 알렸다. 그 후로 그는 매경기 기복 없는 좋은 경기력을 펼치며 첼시의 수비 불안, 중원 문제를 한꺼번에 덜어 내줬고 2014/2015시즌 시작전에 영입된 세스크 파브레가스와 더블 볼란치를 이뤄 현재 세계 최고 수준의 중원을 이뤘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16-17 시즌 후, 첼시가 모나코에서 티에무에 바카요코를 영입하자, 입지가 좁아진 마티치는 첼시의 프리 시즌 투어에 제외되었고, 2017년 7월 31일(한국시각)에 영국 공영 방송 BBC를 통해 4000만 파운드(약 588억 원)의 이적료를 기록하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3년 계약을 맺고 이적하였다. 이로써 마티치는 수비형 미드필더 중 역대 두 번째로 높은 이적료를 기록했으며, 지난 시즌 아스날로 이적한 그라니트 샤카 (4500만 유로) 다음으로 마티치가 4470만 유로로 뒤를 이었다.

2017년 8월 14일(한국시각 자정)에 열렸던 웨스트 햄과의 리그 개막전 경기 때 미드필드에서 굳건한 수비력을 선보였다. 경기 후, 전 세계 팬들을 상대로 실시한 투표에서 74%의 득표율을 얻어 맨 오브 더 매치(Man Of the Match) 선정되었으며, 현지 언론으로부터 평점 9점을 받았다.

마티치는 2018년 3월 6일 새벽 5시(이하 한국 시간), 영국 셀허스트 파크에서 열린 2017-2018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29라운드 크리스털 팰리스를 상대로 환상적인 중거리 슛으로 득점을 기록하여 맨유의 3-2 대역전승을 이끌어냈다.

국가대표 경력
2008-09 시즌 FC 스파르타크 트르나바의 감독 블라디미르 베르메조비치는 그를 세르비아 감독에게 추천하였다. 네마냐는 당시 세르비아 국가대표팀에서 생소한 이름이었다. 2008년 10월 11일, 마티치는 세르비아 U-21 대표팀에 차출되어 덴마크 U-21 대표팀과의 경기에 출전하였다.세르비아 U-21 대표팀 소속으로 3경기 출장과 2골을 기록한 그는 2008년 12월 14일, 폴란드와의 친선경기를 앞두고 세르비아 성인대표팀에 차출되었다.

마티치는 2009년 UEFA U-21 챔피언쉽에 참가하여, 이탈리아와의 첫 조별리그 경기 (0-0) 에서 85분 출장하였다. 마티치는 이탈리아의 세바스티안 조빈코와 충돌하여 부상당하였다. 그는 오른발의 5번째 중족골 골절로 수술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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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오 만주키치

 

 

안녕하세요! 오늘은 유벤투스에서 활약중인 크로아티아 국가대표 스트라이커 마리오 만주키치 선수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름 마리오 만주키치 Mario Mandžukić
출생일 1986년 5월 21일
출생지 유고슬라비아 슬라본스키브로드
190 ㎝
포지션 스트라이커
현 소속팀 유벤투스
등번호 17
청소년 클럽 기록 1992-1996  TSF 디칭겐 
1996-2003  마르소니아 
2003-2004  젤례즈니차르 슬라본스키브로드
클럽 기록 2004-2005 마르소니아 
2005-2007 NK 자그레브
2007-2010 디나모 자그레브
2010-2012 VfL 볼프스부르크
2012-2014 바이에른 뮌헨
2014-2015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2015-유벤투스
국가대표팀 기록 크로아티아 89경기 33득점

마리오 만주키치(: Mario Mandžukić, IPA: [ˈmaːrio ˈmaːndʒukitɕ], 1986년 5월 21일, 유고슬라비아 슬라본스키브로드 ~ )는 크로아티아의 축구 선수로, 포지션은 스트라이커이며, 현재 이탈리아 세리에 A의 유벤투스 소속이다.

만주키치는 독일 슈투트가르트 근교의 TSF 디칭겐, 크로아티아의 NK 마르소니아, NK 젤레즈니차르 슬라본스키브로드 유스를 거쳐, 2004년 NK 마르소니아에서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하였다. 2005년 여름 NK 자그레브로 이적했으며, 2007년에는 크로아티아의 NK 디나모 자그레브에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로 이적한 스트라이커 에두아르두 다 시우바의 대체자로 영입되었다.

디나모 자그레브에서의 첫 시즌에 29경기 출장, 12골 11도움, 8개의 옐로 카드를 기록하였다. 2008-09 시즌, 만주키치는 28경기에서 16골을 넣으며, 프르바 HNL의 시즌 최다 득점자에 올랐다. 2010년 7월, 독일 분데스리가의 VfL 볼프스부르크로 이적하였고, 2012년 새 시즌을 앞두고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한다.

그가 뮌헨으로 이적한 직후에, 전 시즌까지 뮌헨의 주축 공격수였던 마리오 고메즈가 부상으로 장기간 결장하게 되자, 그 공백을 훌륭히 메꾸는 동시에 전술적으로 매우 좋은 활약을 펼치면서 단숨에 주전 자리를 꿰찼고, 이로 인하여 고메즈가 부상에서 회복한 이후에도 계속해서 중용되었다.

정규리그 경기에서 24경기에서 15골을 기록해 득점 랭킹 4위에 올랐고, 시즌 내 모든 대회를 통틀어서는 40경기에 출장하여 22골을 득점하였으며, 또한, 2013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도 선발 출전하여 선제골을 기록하는 등 바이에른 뮌헨의 독일 클럽 역사상 최초의 트레블 달성에 큰 기여를 하였다.

국가대표 경력
2007년 마케도니아와의 경기에서 데뷔했으며, 2008년 잉글랜드전에서 대표팀 첫 골을 넣었다. 그리고 유로 2012에서는 아일랜드와의 첫 경기에서 2골을 득점하고 그 경기의 공식 최우수 선수에 선정됐었다. 그러나 이탈리아와의 2차전에서 동점골을 넣고 1대 1 무승부를 이끌면서 8강 진출을 눈앞에 뒀지만, 스페인과의 최종전에서 1대 0으로 패하면서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2014년 FIFA 월드컵에서는 1차전 브라질전 경고누적으로 출전이 금지되었다. 팀은 3대1 역전패를 당했다. 카메룬과 조별리그 2차전에 2골을 넣어 4대0 완승을 거두는데 일조한다. 하지만, 멕시코와 마지막 3차전에서는 3대1 참패를 당해 1승2패로 조별리그에 탈락했다.

2018년 FIFA 월드컵에서는 팀이 결승까지 올라가는 데 큰 기여를 했으나, 프랑스와의 결승전에서는 FIFA 월드컵 최초의 결승전 자책골을 기록하였고, 팀은 2-4로 참패하여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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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밀리아노 메사

안녕하세요! 오늘은 아르헨티나의 막시밀리아노 메사 선수에대해 알아본느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름 막시밀리아노 메사 Maximiliano Eduardo Meza
출생일 1992년 12월 15일
출생지 헤네랄파스, 아르헨티나
1.80 m
포지션 미드필더
현 소속팀 인데펜디엔테
등번호 8
청소년 클럽 기록 힘나시아 라플라타
클럽 기록 2012–2016 힘나시아 라플라타 100 (12)
2016– 인데펜디엔테 44 (5)
국가대표팀 기록 2018– 아르헨티나 3 (0)

 

막시밀리아노 에두아르도 메사( Maximiliano Eduardo Meza, 1992년 12월 15일 ~ )는 아르헨티나의 축구 선수이다. 현재 소속 팀은 프리메라 디비시온에 소속되어 있는 CA 인데펜디엔테이며, 주로 미드필더로 뛴다.

메사는 2012년에 힘나시아 라플라타에서 데뷔하여, 2016년에 인데펜디엔테로 이적하였다. 클럽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2018년 3월에 열린 이탈리아, 스페인과의 친선 경기에 선발되었다. 3월 27일에 완다 메트로폴리타노에서 열린 스페인과의 친선 경기에서 데뷔전을 가졌고, 경기 결과 6-1로 패배하였다. 이후 2018년 FIFA 월드컵에서 국제 대회에 처음으로 선발되었고, 6월 16일 아이슬란드와의 경기에서 월드컵 데뷔전을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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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즈 마튀디

I LOVE SOCCER 2019. 4. 27. 11:58

블레즈 마튀디

 

안녕하세요! 오늘은 유벤투스의 중앙 미드필더이자 프랑스 국가대표팀의 중원에 한 축을 맡고있는 블레즈 마튀디 선수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름 블레즈 마튀디 Blaise Matuidi
출생일 1987년 4월 9일
출생지 프랑스 툴루즈
180 ㎝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
현 소속팀 유벤투스
등번호 14
청소년 클럽 기록 1993-1998  US 퐁트네-수-부아 
1998-2001  CO 뱅세누아 
2000-2003  INF 클레르퐁텐 
2001-2004  크레테유 
2004-2005 트루아
클럽 기록 2004-2007  트루아 
2007-2011  생테티엔 
2011-2017  파리 생제르맹 
2017- 유벤투스
국가대표팀 기록 프랑스 62경기 9득점

 

 

 

블레즈 마튀디 (프랑스어: Blaise Matuidi, 1987년 4월 9일, 툴루즈 ~) 는 프랑스의 축구선수로, 현재 세리에 A의 유벤투스와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중앙 미드필더로 활약하고 있다. 그는 "날카롭고 강력한 태클러"로 묘사된다

마투이디는 US 퐁트네-수-부아나 CO 뱅세누아와 같은 일-드-프랑스 레지옹의 아마추어 클럽들을 거치며 축구를 시작하였다. 1999년, 그는 클레르퐁텐 아카데미에 들어갔다. 클라르퐁텐을 떠난 후, 마투이디는 반 프로구단인 크레텔에 입단하여 청소년 아카데미에서 3년간 성장하였다. 2004년, 그는 프로구단 트루아와 계약하고 2004-05 시즌에 프로무대에 데뷔하였다. 트루아에서의 3시즌 이후, 마투이디는 생테티엔으로 이적하였다. 생테티엔에서, 그는 2008-09 시즌의 UEFA컵에 참가하며 유럽대항전에 처음으로 출전하였다. 2009-10 시즌, 그는 알랭 페랭 감독에 의해 주장으로 선정되었다. 2011년 7월, 생테티엔에서의 4시즌 이후, 마투이디는 파리 생제르맹과 3년 계약을 체결하며 이적하였다.

마투이디는 전 프랑스 청소년 국가대표로, U-19 대표와 U-21 국가대표로 출전한 기록이 있다. 2010년 8월, 마투이디는 로랑 블랑 신임 감독에 의해 성인 국가대표팀에 처음으로 차출되었다. 그는 2010년 9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와의 UEFA 유로 2012 예선전에서 국가대표팀 신고식을 치르었다.

2017년 여름 유벤투스초기 경력
마투이디는 오트-가론의 툴루즈에서, 앙골라계 아버지 파리아 리벨리노와 콩고 공화국계 프랑스인 어머니 엘리제 사이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 리벨리노는 유년 시절에 프랑스로 이민하였다. 마투이디는 4명의 남매가 있는데, 같이 파리 근교의 퐁트네-수-부아에서 성장하였다. 그는 파리 생제르맹의 경기를 보며 축구에 빠지게 되었고, 전 PSG 공격수 제이제이 오코차의 존경자가 되었다. 마투이디는 6세가 되었을 때, 집 근처의 US 퐁트네-수-부아에 입단하며 축구에 입문하였다. 클럽에서의 5년 후, 그는 인근의 뱅센에 위치한 CO 뱅세누아에 합류하였고, 그곳에서 그는 팀 동료 야신 브라이미를 만났다. 1999년, 마투이디는 일-드-프랑스의 최고 선수들 중 하나로 평가되었고, 이후 명성 높은 INF 클라르퐁텐 아카데미에 들어갔다. 그는 아카데미에서 3시즌 간 훈련을 받았으며, 주중에서 이곳에서 활약하면서 동시에 주말에는 뱅센에서 활약하였다. 2001년, 마투이디는 뱅센을 떠나 반 프로구단 크레텔과 청소년 계약을 체결하였다. 그는 4년을 이 클럽의 유소년 아카데미에서 활약하며 성장하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클럽의 가장 선망스러운 대상이 되었다. 두 차례 우승을 거둔 리옹의 제의에도 불구하고, 마투이디는 트루아와 계약하였고, 클럽의 훈련 센터를 그의 이적 요인으로 삼았다.

트루아
마투이디는 프랑스 축구 5부 리그인, 샹피오나 드 프랑스 아마퇴르 2에 위치한 클럽의 리저브 팀에서 트루아 선수로 데뷔하였다. 2004년 11월, 그는 장-마르크 풀란 감독에 의해 1군으로 승격되었고, 11월 23일, 뇌뇽과의 리그 2 경기에서 프로무대에 첫 발을 내딛었다. 마투이디는 2-1로 이긴 이 경기에서 선발로 출전하여 60분을 활약하였다. 2005년 2월 3일, 그는 갱강과의 리그 경기에서 유일한 1군 출전을 기록하였다. 마투이디는 이후 시즌 잔여 기간동안 클럽의 리저브 팀으로 강등되었고, 그는 팀이 용납할 만한 6위를 거두게 했다. 다음 시즌, 마투이디는 리그 1로 승격된 1군에 영구적으로 재승격되었다. 그는 풀란 감독에 의해 주전으로 기용되어 31경기에 출전하였다. 마투이디는 11장으로 리그에서 가장 많은 카드를 수집한 선수들 중 한명이었다. 그는 2006년 1월 11일, 릴전에서 언론에게 "환상적이다." 라고 칭찬받은 발리슛으로 첫 프로리그 득점에 성공하였고, 팀은 1-0으로 이겼다. 개인적으로 인상적인 시즌을 보낸 것과는 대조되게, 트루아는 17위로 강등을 간신히 면하였다.

2006년 6월 16일, 시즌 종료 후, 마투이디는 잉글랜드 클럽 찰턴 애슬레틱의 관심에도 불구하고 트루아와 4년 계약이라는 첫 프로 계약을 체결하였다. 풀란 감독의 해임에도 불구하고, 마투이디는 드니 트로슈 신임 감독 하에 주전 자리를 유지하였다. 그는 총 35경기에 출전하여 3골을 득점하였다. 그는 수집한 카드 숫자를 6개까지 줄였다. 논란의 여지없이, 마투이디가 트루아 유니폼을 입고 최고의 활약을 펼친 때는 2007년 4월 28일, 스당전이었고, 트루아는 이 경기에서 상대팀과 리그 잔류를 놓고 경기에 임했다. 15분이 남은 상황에서 트루아가 1-2로 끌려가고 있을 때, 마투이디는 동점골을 삽입하였다. 8분 후, 그는 또다시 득점하여 트루아에게 3-2 역전승을 가져다 주었다. 마투이디는 3-0으로 이긴 랑스와의 리그 최종전에서도 득점을 성공하였으나, 트루아는 18위에 머무르며 리그 2 강등이 확정되었다. 클럽의 리그 2 강등으로 마투이디가 클럽과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한 추측이 난무하였다.

생테티엔
보르도, 릴, 그리고 모나코 등의 리그 1의 여러 클럽과 연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2007년 6월 12일에 언론은 마튀디가 생테티엔과 4년 계약을 체결하고 합류하기로 합의를 보았다고 보도하였다. 그는 도착 후, 12번이 새겨진 유니폼을 받았고, 즉시 선발 라인업에 포함되었으며, 로이크 페랭, 크리스토프 랑드랭과 중원에서 협동 관계를 나타냈다. 그는 탈출을 감행한 전 트루아인 동료 바페팀비 고미스와 좋은 조합을 이루었다. 마투이디는 2007년 8월 11일, 발랑시엔과의 리그 경기에서 새팀 데뷔전을 치르었다 그는 로랑 루세 감독의 지도 하에 쭉 주전으로 활약하였다. 클럽은 이 시즌에 준수한 5위의 성적을 내며 UEFA컵 진출권을 획득하였다.

2008-09 시즌, 마투이디의 활약은 잉글랜드 클럽 아스널의 주목을 받았고, 질 그리망디 스카우트가 그를 주시하기 위해 찾아오기도 했다. 그리망디는 동료 프랑스인이자 아스널 감독인 아르센 벵어 감독에게 그를 추천하였다. 마투이디는 시즌 도중 이탈리아 클럽 밀란의 관심도 받았다. 2008년 8월 16일, 그는 2-1로 이긴 소쇼전에서 생테티엔 1호골을 득점하였다.2008년 9월 18일, 마투이디는 이스라엘클럽 하포엘 텔아비브와의 UEFA컵 1라운드 1차전에서 유럽대항전에 처음으로 출전하였다. 그는 생테티엔 소속으로 8경기 출장하였고, 팀은 독일 클럽 베르더 브레멘과의 16강전에서 멈췄다. 마투이디는 0-3으로 패한 릴전에서 생테티엔 레드카드 1호를 받기 전까지 꾸준히 리그에 출전하였다. 시즌 후반기에 마투이디와 클럽은 대체로 부상으로 문제를 겪었다. 팀의 와해는 생테티엔이 리그 최종일에 강등을 간신히 피하는 것으로 끝났다. 시즌 종료 후, 마투이디는 레키프 프랑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클럽을 떠날 의사를 밝혔다, "저는 지금이 적기라고 생각하므로 제 소원은 떠나는 것입니다." 마투이디는 생테티엔에 잔류해도 행복할 것이라고 덧붙여 진술했다. 2009년 여름에 특별한 제의를 받지 못한 후, 다미앙 코몰리 스포르팅 디렉터는 마투이디가 2009-10 시즌에도 클럽에 잔류할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마투이디는 2009-10 시즌의 리그 첫 경기에서 현 주장 로이크 페랭이 부상당하자, 알랭 페랭 신임 감독에 의해 클럽의 새 정주장으로 선정되었다. 페랭이 2009년 9월에 팀에 돌아왔음에도 불구하고, 마튀디가 여전히 주장 완장을 가져갔다. 그의 리더쉽 하에, 생테티엔은 디펜딩 챔피언 보르도를 2009년 10월 3일에 꺾었다. 시즌 도중 페랭 감독이 경질되자, 크리스토프 갈티에르 신임 감독은 주장 완장을 로이크 페랭에게 다시 돌려주었다. 2010년 5월 18일, 마투이디는 0-1로 진 툴루즈와의 경기에서 팀 동료 디미트리 파예트와의 물리적 충돌이 있었다. 전반전 중간에 파예는 팀 동료 요안 베날루안로부터 공격 성향의 부족에 대해 비난하였다. 그는 이후 그는 베날루안의 정서가 반복되게 느껴지자 마투이디와 싸움을 벌였다. 마투이디와 파예는 머리를 맞대었고 후자의 선수는 마투이디의 머리를 가격하다가 브루노 쿠에 주심과 팀 동료로부터 둘 간의 사이를 갈라놓았다. 이 사태의 결과로, 파예는 31분에 교체되어 나갔고, 롤랑 로메유 클럽 회장에 의해 징계가 내려졌다. 2010년 10월 6일, 마투이디와 파예가 모두 프랑스 국가대표팀에 차출된 후, 마투이디는 이 싸움을 두 선수에게 모두 "성숙함의 부족"이라고 묘사하였고, 파예는 이 사태에 대해 "무의미한 논쟁"이라 하며 "이미 설명이 끝나고 이제는 잊혀진 사건."이라고 묘사하였다.

파리 생제르맹
2011년 7월 25일, 프랑스 클럽 파리 생제르맹은 마투이디가 클럽과 3년 계약을 맺었으며 현역에서 은퇴하는 클로드 마켈렐레를 대체하게 될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이적료는 비공개 처리되었으나, 약 €7.5M대에 책정되었으며 향후 인센티브가 추가될 수 있다고 보고되었다. 마투이디는 동료 신입생이자 국가대표팀 동료 제레미 메네즈와 함께 언론에 같은 날 소개되었고, 등번호 14번이 배정되었다. 그는 0-1로 패한 뉴욕 레드불스와의 에미리츠컵에서 PSG 데뷔전을 치르었다. 2011년 8월 6일, 마투이디는 0-1로 패한 로리앙과의 리그 개막전에서 파리 생제르맹 공식경기에 처음 출전하였다. 2014년 2월 26일, 마투이디는 클럽과 4년 연장 계약을 체결하였다.

국가대표팀 경력
마투이디는 전 프랑스 청소년 국가대표 일원으로, U-19 국가대표팀과 U-21 국가대표팀 일원이었다. 그는 크레텔과 트루아의 청소년 국가대표팀 시절 별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였다; 그러나, 2006-07 시즌에 후자의 클럽에서 자신의 자리를 확고이 하면서, 기 페리에 감독에 의해 U-19 국가대표팀에 차출되었다. 마투이디는 2005년 10월 5일, 4-0으로 이긴 노르웨이와의 경기에서 청소년 국제경기에 처음 출전하였다. 그는 이후 2006년 UEFA U-19 축구 선수권 대회의 예선전에 출전하였다. 프랑스는 대회 본선 진출에 실패하였고, 마투이디는 예선전을 치르면서 9경기 출장 무득점을 기록하였다.

마투이디는 르네 지라르 감독에 의해 벨기에와의 2006년 UEFA U-21 축구 선수권 대회를 위해 U-21 국가대표팀에 차출되었고, 하프 타임에 지미 브리앙과 교체되어 출전하였다.그는 2007년 UEFA U-21 축구 선수권의 예선전을 위해 차출되어 충격패를 당한 이스라엘과의 두 예선 플레이오프 경기에 출전하여다. 마투이디는 나이가 차지 않아 대회 탈락 후에도 2007년, 4-0으로 이긴 스웨덴과의 경기에 출전한 많은 유망주 선수들 중 하나였다.마투이디는 2009년 UEFA U-21 축구 선수권 대회의 예선전을 포함하여 다음 10경기에 출전하였다. 2007년의 마지막 경기를 결장한 후, 그는 스페인과의 2008년 첫경기에 출전하였다. 마투이디는 잔여 예선 일정동안 팀에 만났다. 그의 U-21팀 경력은 독일과의 2009년 UEFA U-21 유럽 축구 선수권 본선행을 놓고 벌인 2차전 경기에서 패하며 끝났다.

2년 가까이 국제경기에 나가지 못한 그는, 2010년 8월 5일, 로랑 블랑 신임 감독에 의해 2010년 8월 11일에 열리는 노르웨이와의 친선경기를 위해 성인 국가대표팀에 처음 차출되었다. 그는 이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였으나, 다음 달에 벨라루스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와의 UEFA 유로 2012 예선전을 위해 부상자 대체자원으로 차울되었다. 마투이디는 2-0으로 이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전에서 교체 출전하며 국제경기 신고식을 치르었다. 2011년 3월 29일, 그는 0-0으로 비긴 크로아티아전에서 처음으로 선발 출전하였다.

2014년 3월 5일, 그는 네덜란드와의 친선경기에서 시저스 킥으로 자신의 첫 국제경기 득점을 기록하였고, 팀은 2-0 완승을 거두었다. FC로 이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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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노 토모아키

안녕하세요! 오늘은 일본국가대표 선수이자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에서 활약중인 마키노 토모아키 선수에대해 알아보도록하겠습니다.

 

이름 마키노 토모아키 槙野 智章 Tomoaki Makino
출생일 1987년 5월 11일
출생지 일본 오키나와 현 요나구니 정
182cm
포지션 센터백
현 소속팀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
등번호 5
청소년 클럽 기록 2000-2005 산프레체 히로시마
클럽 기록 2006-2010 산프레체 히로시마
2010-2012 1. FC 쾰른 
2012 → 1. FC 쾰른 II
2012 →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 (임대) 
2013-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
국가대표팀 기록 일본 21경기 2득점

 

 

마키노 도모아키(일본어: 槙野 智章, 1987년 5월 11일 ~ , 오키나와 현)는 일본의 축구 선수이며 포지션은 센터백이다. 현재 J리그 디비전 1의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에서 뛰고 있다.

산프레체 히로시마의 유스팀을 거쳐 2006년 히로시마에 공식 입단하였다. 2006 시즌엔 리그 1경기, 컵대회 1경기 출전에 그쳤으나 2007년 8월 주전 수비수였던 다리오 다바치와 모리타 고헤이가 부상을 당하여 선발 출전 기회를 잡은 뒤 주전으로 도약하였다. 2008년 히로시마가 J2로 강등되었으나 팀에 잔류하여 주전 수비수로 활약하며 팀의 1시즌 만의 J1 복귀에 기여하였다. 2010년엔 J리그 베스트 11에 선정되었다.

2011년 1월 1. FC 쾰른으로 이적하여 29일 장크트 파울리 전에서 데뷔전을 가졌으나 이후 주전 자리를 꿰차는데 실패하여 1년 간 리그 8경기 출전에 그쳤다.

2012년 1월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로 임대 이적하여 주전으로 활약하였고, 같은 해 12월 4일 우라와로 완전 이적하였다. 2013년 9월엔 유럽 무대 재도전 의지를 드러내기도 하였다.

2007년 U-20 월드컵에 출전하여 1골을 기록하였다.

2010년 1월 6일 예멘과의 2011년 AFC 아시안컵 예선 경기에서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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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비에르 마스체라노

안녕하세요! 오늘은 아르헨티나의 국가대표이자 바르셀로나에서 오랜시간 활약했던 허베이 화샤 싱푸의 미드필더 하비에르 마스체라노 선수에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름 하비에르 마스체라노 Javier Alejandro Mascherano
출생일 1984년 6월 8일
출생지 산타페주 산로렌소
170cm
포지션 센터백 / 수비형 미드필더
현 소속팀 허베이 화샤 싱푸
등번호 14
청소년 클럽 기록 1999-2003 리버 플레이트
클럽 기록 2003-2005 리버 플레이트 
2005-2006 코린치앙스
2006-2007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2007-2010 리버풀
2010-2018 바르셀로나
2018-허베이 화샤 싱푸
국가대표팀 기록 아르헨티나 147경기 3득점

 

 

 

하비에르 알레한드로 마스체라노 (스페인어: Javier Alejandro Mascherano, 1984년 6월 8일, 아르헨티나 산타페주 산로렌소 ~ )는 아르헨티나의 축구 선수이다. 소속팀 허베이 화샤 싱푸의 주전 센터백이다. 국가대표팀에서는 리버풀 FC 시절 포지션인 수비형 미드필더로 기용됐다. 리버풀 FC에서 뛸 때 샤비 알론소와 더블 볼란테를 구축하며 세계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 중 한 명이었지만, FC 바르셀로나로 이적 후 초기에는 세르지오 부스케츠에게 밀리며 주로 출전하지 못했다. 그러나 2011-12 시즌부터는 센터백으로 기용되기 시작하며 바르셀로나 센터백들 중 가장 많은 경기에 센터백으로 출전하게 된다. 센터백으로 포지션을 변경한 초기에는 실수가 많고 미숙했으나 시즌 중반부터 센터백 포지션에서도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었다. 수비형 미드필더 출신인 그는 장점인 뛰어난 태클링과 수비력으로 바르셀로나의 수비진을 이끌었다. 마스체라노는 그의 조상이 이탈리아계이기 때문에 이탈리아 여권을 갖고 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그에게 두 가지 별명을 사용하는데 주로 Masche(마스체)와 Jefecito(헤페시토)라는 별명을 사용한다. 마스체라노는 2004년과 2008년 올림픽 축구 종목에 두 번 출전하였고 두 차례의 올림픽에서 모두 금메달을 획득하여 올림픽 축구 종목 2관왕에 올랐다. 마스체라노는 그 동안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의 주장으로 활약하다가 알레한드로 사벨라가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으로 취임하자 리오넬 메시에게 주장 자리를 물려줬다.

2010년 FIFA 월드컵
하지만 마스체라노가 오랫동안 국가대표에서 동반자로 삼았던 에스테반 캄비아소를 디에고 마라도나가 엔트리에서 제외시켰다. 그리고 그 대체자로 넣었다는 게 마스체라노와는 전혀 손발이 맞지 않는 니콜라스 오타멘디였는데 이 때문에 마스체라노는 지역예선때부터 8강까지 시종일관 답답한 플레이를 하며 아르헨티나의 수비 전체를 오직 혼자만의 힘으로 힘겹게 지탱하게 되었다. 믿음직한 수비수인 하비에르 사네티도 없고 마스체라노 앞에서 공수균형을 정리해서 마스체라노를 편하게 해줬던 후안 로만 리켈메도 없는 데다가 같이 손발을 맞춰왔던 에스테반 캄비아소도 없는 상태였으므로 마스체라노는 그야말로 시종일관 무거운 플레이를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나마 자신을 도와줄 사람이 가브리엘 에인세와 왈테르 사무엘 정도였는데 사무엘은 조별리그 도중 무릎을 심하게 다쳐서 16강부터는 결장했다.

그래도 본선에서는 16강까지는 비교적 약한 팀들을 만나서 그나마 다행이였지만 8강에서는 엄청나게 강력한 독일을 만난게 화근이었다. 독일은 아르헨티나의 약점이 뭔지 확실하게 인지하고 있었으며 마스체라노는 매우 힘겹게 아르헨티나의 수비를 지탱하며 엄청난 고생을 했다. 하지만 축구는 혼자 감당하는 데에 한계가 있는 스포츠였으므로 마스체라노는 그 뛰어난 능력에도 불구하고 미로슬라프 클로제, 토마스 뮐러등의 독일 공격수들에게 있는대로 시달린 끝에 대패를 당하고 말았다. 마스체라노는 최고의 수비수임에 틀림없지만 클로제와 뮐러 역시 최고의 공격수였고 혼자 저들을 막는 것은 마스체라노에게도 매우 힘든 일이었는데 설상가상으로 하비에르 파스토레가 마스체라노의 플레이를 방해하는 바람에 일은 더욱 꼬였다. 결국 아르헨티나는 독일에게 두 번 다시 없을 대패를 당하고 말았다.

2011년 코파 아메리카
2010년 FIFA 월드컵에서 마라도나 때문에 낭패를 보자 아르헨티나 축구협회에서는 세르히오 바티스타를 감독으로 선임했다. 하지만 2010년 FIFA 월드컵의 후유증 탓에 마스체라노와 다른 선수들 간에 손발이 맞지 않았고 특히 카를로스 테베스가 메시와 마스체라노에게는 최악의 훼방꾼이었다. 결국 8강전에서 우루과이를 상대로 테베스는 엄청나게 부진했고 승부차기에서도 양팀 10명의 승부차기 키커들 중에 테베스 혼자만 실축하는 바람에 아르헨티나는 코파 아메리카 준결승 자리를 우루과이에게 내줘야만 했다. 테베스가 실수할 때마다 마스체라노는 테베스의 실수를 메꾸기 위해 진짜 엄청난 고생을 했다.

2014년 FIFA 월드컵
2010년 FIFA 월드컵과 2011년 코파 아메리카에서 낭패를 본 아르헨티나 축구협회는 자국 국가대표 감독을 오직 감독으로서의 능력 하나만 보고 선발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인디펜디엔테를 리그에서 우승시킨 알레한드로 사벨라를 감독으로 선임했다. 사벨라는 전술한 감독들과는 비교 자체를 거부할 정도로 노련한 사람이며 머리가 엄청나게 좋은 사람인데다가 심지어는 성격마저도 교활하고 용의주도하기까지 한 인물이었다. 사벨라는 감독이 되자마자 일단 테베스부터 퇴출시키고 난 뒤 마스체라노에게 주어진 주장 자리를 리오넬 메시에게 양보하도록 했다. 이유인 즉 메시를 자신이 하고싶은 플레이를 하게 배려해주기 위해서였다. 메시와 깊은 친분을 갖고 있던 마스체라노는 오히려 기뻐하며 자발적으로 주장완장을 메시에게 내주었다. 마스체라노에게 메시는 역사 그 자체이며 자신의 후배 중 최고로 위대한 후배였기에 주장 자리를 흔쾌히 양보했던 것이다.

사벨라는 오타멘디와 파스토레도 팀에서 퇴출시키고 마스체라노의 파트너로 페르난도 가고, 에세키엘 가라이, 마르코스 로호, 파블로 사발레타, 페데리코 페르난데스 등을 붙여줬는데 다들 손발이 매우 잘 맞았다. 특히 로호의 경우는 오타멘디보다 나이도 어리고 경험도 적음에도 불구하고 실력은 훨씬 좋았고 항상 불협화음으로 일관하는 오타멘디와는 달리 마스체라노와 손발도 아주 잘 맞았다.

사벨라가 마스체라노를 위해서 마스체라노와 손발이 잘맞는 선수들 위주로 수비진을 꾸리자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은 지역예선에서부터 시종일관 짠물수비로 일관했다. 2실점 이상 기록한 경기가 10경기마다 1경기 나올까말까 할 정도로 드물었으며 마스체라노는 자신이 좋아하는 후배 수비수들을 이끌고 지역예선에서부터 종횡무진 활약해서 아르헨티나의 짠물수비에 크게 기여했다. 마스체라노와 이들은 경기에서 손발만 잘맞춘 게 아니라 실제로 이들과 사적으로도 엄청나게 친했다. 때문에 매 경기마다 경기가 끝나면 다같이 모여서 윗옷을 벗고 단체사진을 찍기 일쑤였다.

마스체라노의 이러한 활약 덕에 세르히오 로메로는 대부분의 경기에서 거의 할 일이 없이 놀고있는 상태가 되기까지 했다. 결국 마스체라노의 이런 활약은 지역예선에서 아르헨티나의 득점 평균기록을 경기당 2.18득점(16경기 35득점) 0.95실점(16경기 15실점)을 달성하여 막강 화력과 짠물 수비를 동시에 갖춘 강팀으로 변모시켰다.

마스체라노의 활약은 본선에 올라서도 빛을 발했다. 조별리그에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전에서는 철저한 대인마크로 2-1 승리를 거두게 하였고 이란전에서는 이란의 침대축구에 맞서 좋은 활약을 했다. 다만 나이지리아전에서는 조1위를 확정한 상태라 컨디션 조절을 위해 대충 뛰는 바람에 3-2로 승리했다.

16강 스위스전은 연장혈투까지 가는 진통 끝에 앙헬 디 마리아의 골로 승부를 갈랐고 8강 벨기에 전에서는 곤살로 이과인의 선제골 이후 마스체라노는 벨기에의 장신 선수들에게 계속 시달렸으나 철저하게 마크하는 데에 성공했다.

준결승 네덜란드 전에서도 역시 네덜란드의 공격수들을 끈질기게 쫓아다니면서 막아냈다. 이 경기는 앙헬 디 마리아가 8강 벨기에전에서 부상을 당해 결장함으로 인해서 아르헨티나가 엄청나게 불리한 상황이었으며 마스체라노마저 조르지니오 베이날뒴과 헤딩 경합을 벌이다가 충돌해서 뇌진탕으로 쓰러졌지만 마스체라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체를 거부한 채 계속 뛰겠다고 하면서 오히려 더 열심히 뛰었다. 이후 연장 후반에 아르연 로번의 결정적인 슛팅을 끝까지 쫓아가서 태클로 기어이 막아냈는데 이 장면은 이 경기 최고의 명장면이 되었다. 이 태클은 세르히오 로메로 바로 앞에서 발생했는데 이 태클이 어찌나 대단한 태클이었는지 이를 중계하던 이영표 해설위원은 이정도 태클은 골을 넣은거나 다름없다, 골과 같은 가치의 태클이다라며 마스체라노를 극찬했다. 마스체라노의 놀라운 활약에 힘입어 아르헨티나는 24년 만에 결승에 진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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