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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림동 성폭행 미수범  강간미수 cctv 영상 gif 

 

 

 

오늘은 네티즌들 사이에서 빠르게 퍼지고있는 신림동 성폭행 미수범 강간미수 cctv 영상 gif 파일을 가지고 왔는데요

오늘 새벽 6시 19분 한 여성이 술에취한듯 비틀비틀거리며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자신의 집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고있는데요

 

 

뒤이어 한 남성이 엘레베이터에서 기다리다가

여성이 들어간 문을 잡으려는 행동을 하다가 

끝내 문을 열지는 못했습니다 

정말 찰나의 차이로 문이닫혔는데요 이 부분이 신림동 성폭행 미수범 강간미수 cctv 영상 이라는 이름으로 네티즌들에게 정말 큰 관심을 받고있구요! 청와대 국민 청원까지 등장했습니다!!

 

문이닫힌 뒤에도 신림동 강간미수 cctv 영상에 찍힌 남성은 여성의 문앞을 떠나지 않고있는데요

 

 

 

비교적 인상착의가 뚜렷하게 나왔고 목옆에 문신등으로 유추하여

범인을 꼭 잡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렇듯 요즘 우리나라에서 무서운일들이 정말 많이 일어나고있는데요!

이번 신림동 강간미수 cctv 영상에서도 볼수 있듯이

이런 cctv의 필요성과 성범죄자들에 대한 강도높은 처벌도 꼭 필요한것 같습니다!!

아무쪼록 이번 신림동 강간미수 cctv 사건의 범인은 꼭잡혀서

앞으로 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구요!! 

혹시나 영상속의 남성분을 아신다면 경찰에 신고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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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오비 미켈

I LOVE SOCCER 2019. 5. 4. 16:57

존 오비 미켈

 

안녕하세요! 오늘은 등지고 딱딱 축구계의 물리학자 첼무원이로 불리는 얼마전 중국탈출에 성공 잉글랜드 미들즈브러에서 활약중인 미드필더 존 오비 미켈 선수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름 존 오비 미켈 John Michael Nchekwube Obinna
출생일 1987년 4월 22일
출생지 나이지리아 플래토 주 조스
188cm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
현 소속팀 미들즈브러
등번호 2
청소년 클럽 기록 2002-2004 플래토 유나이티드
클럽 기록 2004-2006 륀
2006-2017 첼시
2017-2019 텐진 터다
2019-  미들즈브러
국가대표팀 기록 나이지리아 6경기 1득점 

존 마이클 은체쿠베 오비나 (영어: John Michael Nchekube Obinna, 1987년 4월 22일 ~ )는 흔히 존 오비 미켈 (영어: John Obi Mikel)로 알려진 나이지리아의 축구 선수이다. 2005년 FK 륀에 입단하여 데뷔하였고, 2006년 6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첼시로 이적하였다. 2017년 1월 중화인민공화국 톈진 터다으로 이적하였다. 2019년 1월 미들즈브러으로 이적하여 활약하고 있다. 포지션은 중앙 미드필더이며, 188cm의 건장한 체격 조건을 갖추고 있다. 2005년 FIFA U-20 월드컵에서 나이지리아 대표로 출전했으며, 2010년 FIFA 월드컵 예선에서 나이지리아의 핵심 선수로 자리잡았으나 대회 직전에 부상으로 본선 무대에는 나가지 못했다.

2013년 9월 21일 풀럼과의 경기에서 자신의 첼시 3호골이자 리그 데뷔골을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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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앙 미란다

I LOVE SOCCER 2019. 5. 4. 16:54

주앙 미란다

 

 

이름 주앙 미란다 João Miranda de Souza Filho
출생일 1984년 9월 7일
출생지 브라질 파라나바이
1.86m
포지션 센터백
현 소속팀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등번호 25
청소년 클럽 기록 코리치바 FC
클럽 기록 2004-2005  코리치바 FC 
2005-2006  FC 소쇼-몽벨리아르 
2006-2011  상파울루 FC 
2011-2015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2015- 인테르나치오날레
국가대표팀 기록 브라질 52경기 2득점

미란다는 코리치바에서 축구를 시작하였고, 여기서 그는 89경기 출전 6득점의 기록을 남겼다. 2005년 7월 29일, 미란다는 프랑스의 소쇼와 4년 계약을 체결하였다. 미란다는 소쇼 소속으로 20번 출전하였고, 시즌을 중위권으로 마감하였으나, 그는 프랑스에 적응하지 못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모국으로 복귀하였다.

2006년 8월, 미란다는 상파울루로 임대되며 브라질 무대로 복귀하였다. 같은 해, 상파울루는 2006년 캉페우나투 브라질레이루를 우승하였다. 그는 2007년과 2008년의 캉페우나투 브라질레이루도 우승하였고, 2007년 과 2008년 에 모두 "올해의 팀"으로도 선정되었다. 이후 상파울루는 미란다의 상파울루에서의 잔여 기간동안 단 하나의 우승컵도 들어올리지 못하였으나, 그는 2009년과 2010년에도 "올해의 팀"으로 선정되며 건재함을 과시하였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2011년 1월, 미란다는 스페인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 합류하였다. 그는 2011년 7월에 상파울루와의 계약이 만료됨에 따라, 마드리드로의 이적은 자유이적이었으며, 그는 3년짜리 계약서에 서명하였다. 2011년 8월 25일, 미란다는 4-0으로 이긴 포르투갈의 비토리아와의 유로파리그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새 클럽 소속으로 처음으로 출전하였다. 9월 10일, 미란다는 로베르토 솔다도의 결승골에 0-1로 패한 발렌시아와의 경기에서 라 리가 데뷔전을 가졌다.
2012년 3월 11일, 이 브라질인 수비수는 그라나다와의 경기에서 디에고 고딘의 패스를 좌측 상단 구석 골네트를 가르며 수도 연고 클럽의 첫 골을 득점하였고, 팀에 2-0 승리를 안겼다. 그의 첫 유럽대항전 골은 약 한달 후인 4월 19일, 4-2로 승리한 발렌시아와의 유로파리그 준결승 1차전에서 팀의 두 번째 골로 득점하였다.

미란다는 4-1로 이긴 유럽 챔피언 첼시와의 2012년 8월 31일 UEFA 슈퍼컵 경기에서 팀의 3번째 득점을 올렸다. 2013년 3월 12일, 미란다는 마드리드와 재계약하며 2016년까지 스페인에 남게 되었다. 5월 17일, 코파 델 레이 결승전에서, 미란다는 연장전에 아틀레티코가 레알 마드리드를 2-1로 리드하는 결승 헤딩골을 득점하였다. 이 경기의 승리로 1999년부터 이어오던, 지역 라이벌과의 경기에서의 무승 행진을 25경기만에 깼다.

국가대표팀 경력
2007년 8월 20일, 미란다는 알제리와의 친선경기를 앞두고, 루시우의 대체자로써, 국가대표팀에 처음으로 차출되었다. 그러나, 그는 벤치 요원으로 대기하였으나, 교체 투입되어 데뷔전을 치르지는 못하였다. 1년보다 더 지난 후, 미란다는 2009년 4월 1일, 페루와의 2010년 FIFA 월드컵 예선전에서 브라질 대표로 첫 국제경기 출전을 기록하였다. 그는 경기 도중 부상당한 루이장과 교체 투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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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뮐러

I LOVE SOCCER 2019. 5. 4. 16:42

토마스 뮐러

 

안녕하세요 !오늘은 바이에른 뮌헨과 독일 국가대표팀 공격수로 활약중인 토마스 뮐러 선수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얼마전 정우영선수의 데뷔전에서 토마스 뮐러선수와 교체되는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는데요,

토마스 뮐러 선수에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름 토마스 뮐러 Thomas Müller
출생일 1989년 9월 13일
출생지 서독 바일하임
186 cm
포지션 공격수
현 소속팀 바이에른 뮌헨
등번호 25
청소년 클럽 기록 1993-2000  TSV 펠 
2000-2007 바이에른 뮌헨
클럽 기록 2007-2009  바이에른 뮌헨 II 
2008- 바이에른 뮌헨
국가대표팀 기록 독일 100경기 38득점

토마스 뮐러 ( Thomas Müller, 1989년 9월 13일, 서독 바이에른주 바일하임 ~ )는 독일의 축구 선수이며, 현재 독일 분데스리가의 바이에른 뮌헨 소속이다. 포지션은 세컨드 스트라이커다. 그는 스피드, 기술, 차분한 성격으로 찬사를 받았고, 직접 득점을 하거나 찬스를 만드는데 꾸준한 모습을 보였다. 바이에른 뮌헨의 유소년팀 출신으로, 그는 루이스 판 할이 감독으로 내정된 2009-10 시즌에 1군으로서 맹활약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분데스리가와 DFB-포칼 더블을 달성한 이 시즌에 거의 대부분의 경기에 출전하였고,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도 올랐다. 이 성과를 바탕으로, 국가대표팀에 차출되었고, 시즌 종료 후에는 2010년 FIFA 월드컵의 23인 최종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고, 월드컵 본선 6경기에 출전하여 5골을 득점하여 팀이 대회 3위에 오르는데 일조하였다. 그는 대회의 최우수 신인 선수상을 받았고, 5골 3어시스트로 골든 부트를 획득하였다. 주로 뛰어난 위치 선정으로 많은 득점에 성공했는데 이러한 능력 덕분에 그는 독일에서 ‘공간 연주자’(Raumdeuter 라움도이터[*])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초기 경력
바일하임 출신으로, 뮐러는 TSV 펠의 유소년 팀에서 축구를 시작하였고, 2000년, 10세에 50 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푸스발-분데스리가의 클럽 바이에른 뮌헨에 합류하였다. 그는 FC 바이에른 뮌헨 청소년 팀을 거쳤고, 2007년 U-19 푸스발-분데스리가의 준우승 주역이었다. 2008년 3월, 그는 FC 바이에른 뮌헨 II 데뷔전을 치루었는데, 그는 SpVgg 운터하힝과의 레기오날리가 경기에서 슈테판 퓌어슈트너와 교체되어 첫 출전하였고, 같은 경기에서 득점에 성공하였다. 그는 같은 시즌에 레기오날리가 경기를 두번 더 출전하였고, 그 동안 U-19 팀에서도 활동을 계속하였다. 그 다음 시즌, 바이에른 리저브팀은 새로 출범한 3. 리가의 일원이 되었고, 2008-09 시즌의 3. 리가에서 뮐러는 38 경기 중 32경기에 출전하며 주축 선수로 활약하였고, 15번 득점하며 득점 5위에 랭크되었다. 그는 당시 1군 감독인 위르겐 클린스만의 부름을 받아 1군 경기에도 출전하였고, 그는 프리시즌 친선경기에 참가하였고, 2008년 8월 15일에 함부르크 SV와의 푸스발-분데스리가 경기에서 10분을 남겨놓고 미로슬라프 클로제와 교체 투입되며 공식적으로 데뷔하였다. 뮐러는 비록 자신의 성과를 보잘 것 없다고 평가하였으나, 이후 그는 같은 시즌의 분데스리가 경기에 3번 더 출전하였고, 2009년 3월 10일, 7-1로 승리한 스포르팅 CP와의 UEFA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72분에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와 교체 투입되며 첫 유럽대항전 경기를 경험하였다. 그는 바이에른의 마지막 득점을 성공시켰고 팀은 합계 스코어 12-1로 다음 라운드에 진출하였다.

2009-10 시즌
2009년 2월, 뮐러는 리저브팀 동료 홀거 바트슈투버와 처음으로 1군 계약을 체결하였는데, 이는 2009-10 시즌부터 2년 유효하였다. 그는 기존에 임대되거나 여차하면 1군 출전을 위해 이적할 계획이었으나, 루이스 판 할이 신임 감독으로 부임한 후, 두 선수들은 모두 시즌 초를 기점으로 팀 주축이 되었다. 시즌 극 초반, 뮐러는 교체 요원이었으나, 2009년 9월 12일, 그는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전에서 2골을 득점하여 5-1 승리를 견인하며 진가를 발휘하였다. 사흘 뒤, 그는 마카비 하이파 FC와의 UEFA 챔피언스리그 2009-10 경기에서 또다시 쐐기골을 뽑아내었다. 그는 분데스리가 이 달의 선수로 선정되며 9월을 마감하였고, 같은 성을 쓰는 바이에른 뮌헨의 전설이자 전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스트라이커 게르트 뮐러의 찬사를 받았다. 하이파전 이후, 뮐러는 거의 대부분의 경기에 주전으로 출전하였는데, 결장한 경기는 징계로 빠진 FC 지롱댕 드 보르도 전이 유일했다. 그는 같은 대회의 바로 전 경기에서 퇴장당했었다.

2010년 2월, 뮐러는 2013년까지 유효한 재계약을 체결하였다. 시즌 후반기, 뮐러는 1군 활동을 계속하였으나, 프랑크 리베리와 아르연 로번 같은 유능한 윙어들이 넘침에 따라 중앙 공격을 담당하였다. 2010년 4월, 그는 타이틀 경쟁팀인 FC 샬케 04와의 경기에서 결승골을 득점하였고, 팀은 2-1로 승리하였고, 3-1로 승리한 VfL 보훔과의 리그 33라운드 경기에서는, 첫 해트트릭에 성공하였다. 같은 경기에서 팀은 푸스발-분데스리가 우승을 확정지었다. 1주일 후, 바이에른은 뮐러가 주전으로 출전한 헤르타 BSC 베를린과의 경기에서 3-1로 승리한 뒤 우승을 자축하였다. 이 시즌동안 뮐러는 분데스리가 34경기에 모두 출전하였고, 이 중 29경기는 주전으로 출전하였으며, 13골 11어시스트의 스탯을 기록하였다. 1주일 후 베를린을 다시 찾은 바이에른은 SV 베르더 브레멘과의 DFB-포칼 2009-10 결승전에서 4-0 승리를 거두며 국내 더블을 달성하였다. 뮐러는 이 시즌의 컵 대회에서 4골 2어시스트를 기록해 이 대회의 득점 선두로 마무리하였다. 바이에른은 이 시즌에 트레블 달성을 목표로 삼았으나, 마드리드의 에스타디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벌어진 2010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를 상대하였다. 그러나, 디에고 밀리토에게 득점을 내 주며 0-2로 완패하였다. 뮐러는 선발로 출전하여 하프타임에 0-1로 뒤진 상황에서 동점할 기회를 잠았으나, 줄리우 세자르 골키퍼에게 막히며 무산되었다. 뮐러는 이 경기의 패배에 대해 특히 실망감을 느꼈으나, 1군에서의 첫 시즌에 전 대회를 통틀어 52경기 출전 19골을 기록하며 마무리하였다. 키커지가 주최한 투표에서, 그는 팀 동료에 의해 2009-10 시즌의 최우수 신인선수로 선정되었고, 올해의 팀에 포함되었다. 뮐러는 그의 성공을 도운 판 할 감독에 감사를 표하였는데, 판 할 감독은 AFC 아약스 시절부터 유소년팀 선수들의 발전을 돕던 선수로, "내가 있을 때에, 뮐러는 항상 출전을 보장 받을 것" (Müller spielt bei mir immer) 라며 뮐러에게 자주 기회를 주었다. 뮐러는 그에 대한 답으로 판 할을 "천재적 테크니션"으로 선수를 "날마다 발전시킨다."라고 묘사하였다.

2010–11 시즌
뮐러는 월드컵 후의 휴식을 마치고 연장계약을 체결하였고, 그에 따라 2015년까지 바이에른에 남게 되었다. 그는 다른 바이에른의 월드컵 출전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프리시즌 경기에 불참하였고, 8월 7일에 시행된 FC 샬케 04와의 2010 DFL 슈퍼컵 경기에 복귀하였다. 그는 선발 라인업에 포함되었고, 득점하며 2-0 승리를 도왔다. 2주 후, 그는 2-1로 승리한 VfL 볼프스부르크와의 홈 경기에서 2010-11 시즌의 리그 첫 골을 득점하였다. 뮐러는 시즌 전반기의 모든 경기에 출전하였고, 대부분 선발이였다. 그러나, 팀은 악전고투를 거듭하였고, 뮐러는 전 시즌 처럼 날카로운 골 결정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벤치로 밀려났고, 8월에 0-2로 패한 1. FC 카이저슬라우테른전에서 골찬스를 날린 뒤에는 루이스 판 할 감독의 꾸지람을 듣기도 하였다. 그는 판 할 감독의 철책을 준수하였으나, 8경기동안 무득점으로 침묵한 뒤, 4-1로 승리한 11월 27일의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전에서 득점하였다. 그는 3주 후, VfB 슈투트가르트와의 연속된 리그전과 컵 경기에서 득점하였다. 그 결과, 그는 모든 대회를 통틀어 8득점을 기록하였고, 이 중 한 골은 9월 15일 2-0으로 승리한 AS 로마와의 UEFA 챔피언스리그 경기 선제골이었다. 그는 팀과 겨울 휴식기를 보내는 동안, 인터뷰에서 "놀라운 프로경력 원년"이라고 2010년을 되돌아보았다. 뮐러는 시즌 후반기를 좋은 기량으로 시작하였으나, 3-1로 승리한 SV 베르더 브레멘 전에서 실망스러운 프리킥으로 아르연 로번을 분노케 하여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뮐러는 또다시 시즌 전 경기에 출전하였고 19득점 (리그 12득점) 을 기록하였으나, 바이에른은 리그를 3위로 마치고, DFB-포칼은 FC 샬케 04에 패하며 준결승전에서 탈락하였고, UEFA 챔피언스리그 2010-11의 16강전에서는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에 패하며 무관으로 마감하였다. 바이에른은 챔피언스리그 원정 1차전에서 1-0 승리를 거두었고, 뮐러는 2차전에서 31분에 득점을 하며 합계 3-1로 앞서 나갔으나, 인테르가 88분까지 연달아 득점하며 3-3 동점을 만들어 냈고, 원정 다득점 원칙에 따라 바이에른이 탈락하였다. 뮐러의 멘토 판 할은 유연치 못한 전략, 이적과 선발 철칙에 대해 맹비난을 받았고, 결국에는 해임되었다. 판 할의 자리는 유프 하인케스가 차지하였다.

2011–12 시즌
바이에른의 첫 아인트라흐트 브라운슈바이크와의 DFB-포칼 2011-12 경기에서, 뮐러는 마리오 고메스와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의 페널티킥을 유도한 공로로 맨 오브 더 매치로 선정되었고, 이후 뮐러는 3번째 골을 득점하였고 팀은 3-0으로 승리하였다. 뮐러는 5번째로 출전한 리그 경기에서 첫 리그골을 득점하였고, 바이에른은 FC 샬케 04에게 2-0으로 이겼다. 뮐러는 그 다음 홈경기에서 초반에 선제골을 득점하였고, 팀은 3-0으로 승리를 쟁취하였다. 2011년 11월 26일, 뮐러는 FC 잉골슈타트 04와의 DFB-포칼 경기에서 30분만에 선제골이자 포칼의 시즌 두 번째 득점을 기록하였고, 바이에른은 6-0 대승을 거두었다. 뮐러는 2011년 FIFA 발롱도르 후보에 올랐다.] 1월 10일과 1월 15일, 바이에른의 두 차례 연습경기에서, 뮐러는 3골을 삽입하였는데, 두 골은 인도 국가대표팀과의 경기에서 (이 경기에서 바이에른은 4-0 승리를 거두었다.) 기록하였고 나머지 한 골은 바이에른이 4-0으로 이긴 FC 로트바이스 에르푸르트전이었다. VfB 슈투트가르트와의 DFB-포칼 2011-12 경기에서 뮐러는 두 차례 어시스트를 하며 팀의 승리에 일조하였다. 2월 11일, 뮐러는 2-0으로 승리한 1. FC 카이저슬라우테른전에서 헤딩으로 득점하며 2011년 9월 24일부터 지속되던 골가뭄을 해소하였다. 2012년 3월 31일, 1. FC 뉘른베르크전에서 뮐러는 분데스리가 100경기 출전을 자축하였다. 2012년 5월 19일, 뮐러는 강력한 헤딩으로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선제골을 뽑아내었다. 그는 득점 직후 교체되었다. 그러나, 바이에른은 승부차기 끝에 패하였다. 뮐러는 최근 벤치에서 보낸 시간에 대해 불만족스러워 하였지만 그 가운데서도 바이에른 잔류를 희망하였다.

2012–13 시즌
뮐러의 첫 분데스리가 득점은 2012년 8월 27일, 2. 푸스발-분데스리가에서 1위로 승격된 SpVgg 그로이터 퓌르트와의 경기에서 기록하였고, 바이에른은 3-0으로 승리하였다 9월 2일, 바이에른은 71,000석으로 알리안츠 아레나의 수용력을 확장시킨 뒤 처음으로 홈 경기를 맞이하였는데, 바이에른은 이 경기에서 슈투트가르트를 6-1로 눌렀고 뮐러는 쐐기골을 득점하였다. 뮐러는 바이에른의 리그 초반 신기록 달성에 기여하였는데, 그는 10월 20일 포르투나 뒤셀도르프와의 5-0으로 승리한 경기에서 득점하였고, 팀은 8연승을 기록하였다. 사흘 뒤, 릴 OSC의 신 홈구장 그랑 스타드 릴 메트로폴에서 열린 UEFA 챔피언스리그 2012-13 원정 경기에서 페널티 스폿으로 날아온 골을 시즌 최고의 골로 만들에 냈고, 팀은 1-0 승리를 거두었다.

12월 13일, 분데스리가 전반기 동안 좋은 모습을 보인 그는 뮌헨만큼 편안한 곳은 없다고 "FC 바이에른 뮌헨을 떠나면 갈 곳이 없다 ... 이보다 더 좋은 클럽은 없다." 라 인터뷰하며 충성심을 보였다. 6일 후, 그는 2년 연장계약을 체결하였고, 그에 따라 2017년까지 알리안츠 아레나에 남게 되었다. 분데스리가 겨울 휴식기까지 그는 16번 리그 경기에 출전하여 9득점 7어시스트를 올렸고, 챔피언스리그에서도 3골을 득점하였다. 그는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의 DFL-슈퍼컵 2012 경기에서 넣은 골을 포함하여, 시즌 전반기에 13골을 삽입하였다. 뮐러는 후반기 첫골을 VfB 슈투트가르트전에서 득점하였고, 팀은 2-0 완승을 거두었다. 4월 2일, 뮐러는 챔피언스리그 시즌 5호골을 유벤투스 FC와의 8강 1차전에서 득점하였고, 팀의 2-0 승리로 유벤투스의 유럽대항전 18경기 무패기록을 종식시켰다. 2013년 4월 23일, 뮐러는 4-0으로 승리한 FC 바르셀로나와의 챔피언스리그 준결승 1차전, 알리안츠 아레나 홈경기에서 2골 1어시스트를 올렸다. 2차전에서, 뮐러는 또다시 헤딩으로 득점하였고, 바이에른은 3-0 승리로 바르셀로나에게 합게 7-0의 UEFA 챔피언스리그 4강전 역대 최다 점수차 패배를 안겼다. 이후 뮐러는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2-1로 승리하는데 중대한 역할을 하였다. 6월 1일, 뮐러는 DFB-포칼 2012-13 결승전에서 페널티킥으로 득점하였다. 바이에른은 이 경기에서 3-2 승리를 거두며 트레블을 달성하였다. 뮐러는 한 시즌동안 (모든 대회를 통틀어) 23골을 기록하였는데, 13번은 분데스리가에서, 1번은 포칼에서, 1번은 2-1로 승리한 DFL-슈퍼컵 2012에서, 그리고 챔피언스리그에서 8번 득점하였다. 이는 현재까지 개인 역대 최다 득점 기록이다.

국가대표팀 경력
뮐러는 2004년에 U-16팀에 차출되는 것을 시작으로, 다양한 연령대의 독일 청소년 축구 국가대표팀 경기에 출전하였다. 2009년 8월, 그는 1-3으로 패한 터키 U-21와의 경기에서 독일 U-21 대표팀 첫 출전을 기록하였다. 그는 U-21 대표팀 일원으로 6경기에 출전하여 한골을 득점하였고, 그 한 골은 11-0으로 승리한 산마리노 U-21 과의 경기 중에 터진 팀의 8번째 골이었다.

같은 해 10월, 뮐러는 바이에른 경기에 주전으로 출전하면서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 요아힘 뢰프는 공개적으로 그의 차출을 고려하기 시작하였다. 뮌헨 보도진들은 처음에 이를 꺼려했으나, 그 다음달에, 뮐러는 코트디부아르와의 친선경기를 앞두고 스쿼드에 발탁되었다. 그러나, 이 경기는 국가대표팀 골키퍼 로베르트 엥케의 사망과 겹쳐, 같은 주에 일정이 잡힌 칠레전도 취소되었다. 신인 선수의 기회가 적어지고, U-21 국가대표팀이 2011년 UEFA U-21 축구 선수권 대회의 예선전에서 탈락하면서, 뢰프와 U-21 국가대표팀 감독 라이너 아드리온은 U-21 팀에 뮐러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뮐러를 U-21 국가대표팀에 복귀시켰다.

그는 2010년 1월 진델핑엔의 훈련 세션때 성인 국가대표팀에 재차출되었고, 이어지는 아르헨티나와의 3월 친선경기의 스쿼드에 이름을 올렸다. 그는 그의 홈 경기장인 알리안츠 아레나에서 선발로 데뷔전을 치루었다. 그는 0-1로 패한 이 경기에서 66분에 토니 크로스와 교체되어 나갔다.

2010년 FIFA 월드컵
뮐러는 2010년 FIFA 월드컵을 앞두고 독일의 27인 예비명단에 포함된 8명의 바이에른 뮌헨 선수들 중 한명이 되었다. 이탈리아 볼차노현의 훈련 캠프에서 자전거에서 떨어져 경미한 부상을 당한 그는 월드컵 본선에 출전할 23인 최종 엔트리에 무사히 포함되었다. 그는 부상당한 국가대표팀 주장 미하엘 발라크와 같은 성을 가진 게르트 뮐러 가 사용했던 등번호인 13번에 배정되었다. 그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와의 최종 평가전에서 2번째 국가대표팀 경기에 출전하였는데, 그는 하프타임에 피오트르 트로호프스키와 교체투입되었고, 팀은 3-1 승리를 거두었다. 그는 4-0으로 승리한 오스트레일리아와의 월드컵 첫 경기에서 팀의 3번째 득점을 성공시켰고, 이 과정에서 독일 이달의 골 상을 수상받았다. 그는 독일 국가대표팀의 모든 조별리그 경기를 소화하였고, 팀은 죽음의 조로 평가되는 D조를 1위로 통과하였다. 그는 이어지는 잉글랜드와의 16강전 경기에서 2골을 득점하고 1번 어시스트를 배급하며 독일의 4-1 대승을 견인하였다. 아르헨티나와의 8강전에서 킥오프 이후 3분만에 그는 대회 4호골이자 선제골을 뽑아내었고, 독일은 4-0 승리로 경기를 마무리지었다.그러나, 그는 전반전에 핸들링 반칙을 범하며 대회 두 번째 옐로우 카드를 받았고, 스페인과의 준결승전에서 팀이 패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는 우루과이와의 3위 결정전에서 복귀하였고, 선제골이자 대회 5호골을 득점하였고, 독일은 3-2 승리를 거두며 3위를 확정지었다.독일의 성공은 UEFA 유로 2000의 참사 이후 여러 차례의 변화를 걸쳐서 이루어졌다. 독일은 공격적이고, 개방적인 쪽으로 발전하였고, 뮐러, 자미 케디라, 메수트 외질을 비롯한 재능있는 젊은 선수들을 발굴하였다.

5골을 득점한 뮐러는 공동 최다 득점자가 되었다. 그는 3어시스트를 기록한 덕에 골든슈를 획득할 수 있었다.

그는 다른 후보인 가나의 앙드레 아유와 멕시코의 히오바니 도스 산토스를 제치고 최우수 신인 선수로 선정되었다.[95] 두 개의 개인상을 받은 그는 2006년 FIFA 월드컵의 수상자이자 독일 국가대표팀 동료인 미로슬라프 클로제와 루카스 포돌스키의 뒤를 이었다.

2010년 10월, 그는 독일 국가대표팀 동료 4명과 함께 FIFA 발롱도르 후보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2014년 FIFA 월드컵
2년 전 UEFA 유로 2012에서는 썩 좋은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지만 월드컵은 역시 뮐러의 무대였다. 1차전 포르투갈과의 경기에서 뮐러는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포르투갈 격파의 선봉장 노릇을 했다. 독일은 G조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였던 포르투갈을 상대로 뮐러의 해트트릭과 마츠 후멜스의 헤더골을 묶어 무려 4 : 0 대승을 거두었다. 하지만 2차전부터 독일은 다소 답답한 모습을 보였고 가나를 상대로는 하마터면 질 뻔했다가 2 : 2로 간신히 무승부를 거두었다. 3차전 미국을 상대로도 독일은 일방적인 경기를 펼치고도 좀처럼 미국의 골문을 열지 못했으나 후반 10분, 토마스 뮐러가 세컨드볼을 곧바로 논스톱 슛으로 연결해 결승골을 터뜨리며 1 : 0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브라질과의 4강 경기에서 선제골을 넣었으며, 팀은 7-1 승리를 거두었다.

2018년 FIFA 월드컵
라움도이터로서 한계를 맞이한 것이 명백하게 드러난 대회였다. 지난 2번의 대회에서 각각 5골씩 뽑아내며 미로슬라프 클로제가 세운 월드컵 최다 득점 기록을 갱신할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이번 대회에서는 이전 2번의 대회에서 보여준 활약의 단 10%도 보여주지 못했다. 1차전 멕시코전에선 멕시코의 타이트한 압박 수비에 고전을 면치 못하며 침묵했고 확실한 킬러가 없었던 게 약점이었던 독일은 결국 0 : 1로 충격적인 패배를 당하고 말았다. 2차전 스웨덴전에서도 뮐러는 선발 출전했지만 큰 활약을 보이지 못했다. 스웨덴과의 경기에서도 독일은 전반 32분에 올라 토이보넨에게 선제골을 허용하며 0 : 1로 끌려갔으나 후반 3분, 마르코 로이스의 동점골과 종료 직전 토니 크로스의 멋진 프리킥 역전골에 힘입어 2 : 1 역전승을 거두며 간신히 16강 진출의 불씨를 살렸다. 3차전 대한민국과의 경기에선 선발 출전 명단에서 제외되었으나 좀처럼 골이 터지지 않고 0 : 0 상황이 지속되는 와중에 스웨덴이 멕시코를 상대로 앞서가니 결국 후반 17분, 레온 고레츠카와 교체 투입되었다. 하지만 대한민국을 상대로도 뮐러는 그리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고 독일 공격진 전체가 점점 조급함을 이기지 못하고 호흡이 안 맞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후반 추가시간에 김영권과 손흥민에게 연달아 골을 내주며 0 : 2로 완패하였고 독일은 80년 만에 1라운드 탈락이라는 최악의 성적을 받아들게 되었다. 경기가 끝난 후 뮐러는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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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앙 무티뉴

I LOVE SOCCER 2019. 5. 4. 16:33

주앙 무티뉴

 

안녕하세요! 오늘은 포르투갈의 국가대표 미드필더이자 울버햄튼 원더러스에서 활약중인 미드필더 주앙 무티뉴 선수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름 주앙 무티뉴 João Filipe Iria Santos Moutinho
출생일 1986년 9월 8일
출생지 포르투갈 포르티망
170cm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
현 소속팀 울버햄턴 원더러스
등번호 28
청소년 클럽 기록 1996-2000  포르티모넨스 
2000-2004 스포르팅
클럽 기록 2003-2004  스포르팅 CP B 
2005-2010  스포르팅 CP 
2010-2013  포르투 
2013-2018  모나코 
2018- 울버햄프턴 원더러스
국가대표팀 기록 포르투갈 113 경기 7득점

클럽 경력

주앙 무티뉴는 그의 고향 클럽 포르티모넨스 SC에서 좋은 모습을 보인 뒤, 그가 14살이 될 때 그는 스포르팅 CP 이적에 동의하고, 그의 축구 교육을 계속하였다.

2004-05 프리시즌, 그가 불과 17살일때, 그는 당시 감독인 조제 페세이루에 의해 1군으로 차출되었고, 몇몇 경기에 출장하여, 젊은 나이에 재능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후에는, 하지만, 다시 당시 새로 내정된 파울루 벤투 감독에 의해 미겔 벨로주나 루이스 나니와 함께 1군에서 제외되었다. 그는 그 해에 국내 대회 타이틀을 얻도록 도왔으며, 그는 1군으로 다시 불렸다.

2005년 초, 모티뉴는 포르투갈 컵을 위해 차출되었고, FC 팜필료자 전에 20분 출장하였고, 같은 해 1월 23일에 3-0으로 승리한 질비센트 FC전에도 출장하였고,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쓰던 28번 져지를 수여받았다. 꾸준한 플레이로부터, 그는 짧은 시간내에 주전 자리를 꿰차고, 가장 빛나는 선수중에 하나로, 다이아몬드 미드필드나, 플랫 미드필드로도 소화할 수 있었다. 그의 박스-투-박스 플레이는 팬의 인기를 얻게 하였고, 그는 드물게 결장하였고, 주전선수였다.

주앙 무티뉴의 그 시즌을 마감하는 경기에서의 성과로는 UEFA 컵 MVP를 페예노르트전과 뉴캐슬 유나이티드 FC전에서 획득하고, 스포르팅이 결승에 진출하는데 공헌하였다. 결승전에서 그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주전으로 뛰었고; 그는 15 리그 경기에 공헌하였고, 스포르팅은 2위로 마무리하였다. 그 해 여름, 그는 스포르팅과 1년 연장 계약을 하였다.

그의 첫 번째 풀 시즌, 모티뉴는 꾸준함으로 더 진보하였고, (그는 그 시즌 모든 리그 경기에서 풀타임으로 출장한 유일한 선수였다.) 스포르팅의 준우승에 공헌하였다. 우여곡절 끝에, 그는 그의 1-0 결승골을 SC 브라가에서 뽑았고 UEFA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리스본의 클럽에게 가져왔다.

2006-07 시즌, 팀 동료이자 베테랑 히카르두 사 핀투가 떠나자, 모티뉴는 불과 19세의 나이에 부주장이 되었다. 이어지는 시즌에서 쿠스토디우 카스트루와 히카르두가 팀을 떠나자, 그는 주장이 되었고, 팀의 역사상 2번째로 젊은 주장이 되었다. 그보다 더 젊은 나이에 주장직을 하게 된 자는 조 창단자, 프란시스쿠 스트롬프였다.

그 시즌, 레안드로 로마놀리 (공격형 미드필더) 또한 선발이 되었고, 모티뉴는, 2선의 미드필더에서 오른쪽 미드필더로 옮겼고, 다시 인상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 시즌, 그 시즌동안, 그는 클럽의 상징적 존재가 되었고, 리그 최고의 선수중 한명이 되었다.

2008-09 시즌, 에버튼 FC 이적이 불발된 후, 모티뉴는 다시 선발로 나왔고, 3경기만 결장하였고, 다시 리그 2위로 마감하였다. (50경기 출장) 그는 또다시 FC 바이에른 뮌헨 과의 경기에서 합계 1-12로 대패하였을때, 그는 유일한 스포르팅의 골을 넣었다.

2010년 7월 10일, 모티뉴는 스포르팅의 라이벌 FC 포르투에 5년 계약을 하였고, 이적료는 €11M으로 책정되었다. (€1M은 누누 안드레 코엘류 사용 권한 전체의 50%를 지불) 추가적으로 스포르팅은 25%를 그 기간동안 이루어지는 이적료를 가져가게 함으로써, 이전의 이적료를 넘겼다. 스포르팅 회장 조제 에두아르두 베텐쿠르트는 모티뉴의 행위를 개탄스럽게 생각하고 "썩은 사과" 라고 불렀다. 그는 또다시 "이 이적은 스포르팅이 원해서 된 것으로, 그 이유는 썩은 사과를 과수원에서 원하지 않고, 그리고 모범이 되지 못한 놈이나, 위엄있는 클럽 아이콘을 원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그 후, 포르투는 선수의 경제 권한을 제 3자인 마머스 BV에 37.5%인 €4,125,000를 매각하였다.

논란이 되는 이적 이후, 포르투에서의 첫 번째 시즌에, 60경기에 육박하는 북포르투갈 클럽의 경기에 출장하였고, 팀의 리그 우승에 기여하였다. 모티뉴는 포르투갈 컵에서 두 차례 골을 기록하였고, 가장 중요한 승리는 SL 벤피카 원정에서의 3-1 승리때에 넣은 골로, 1차전 0-2 홈에서의 패배를 만회하고 결승에 진출하였다. 2013년 5월, AS 모나코로 이적하였다.

2018년 7월 24일, 울버햄프턴 원더러스로 이적하였다.

국가대표 경력
18살에 국가대표에 처음 차출된 뒤, 주앙 무티뉴는 이집트 와의 홈 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렀고, 팀은 2-0 승리를 하였다. 그 후 2006년 FIFA 월드컵 종료 후, 그는 단골로 국가대표에 차출되었다.

2008년 5월 31일, 모티뉴는 국가대표 첫 골을 비제우의 이스타디우 두 폰텔루에서 2-0으로 승리한 조지아 전에서 골을 넣었다. 그는 UEFA 유로 2008의 23인 스쿼드에 포함되었고, 그는 하울 메이렐레스의 터키전에서 어시스트하여 팀의 2-0을 이끌었다.

그는 또한 UEFA U-21 유럽선수권 대회 2경기에도 출전하였고, 2006년 홈에서 열린 대회에는 독일을 상대로 골을 넣었지만,조기 탈락을 막지는 못하였다.

2010년 FIFA 월드컵의 24인 명단에 들지는 않았지만, 그는 6명의 백업 선수중 한명으로 지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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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 모드리치

 

안녕하세요! 오늘은 크로아티아의 국가대표 선수이자 레알마드리드의 등번호 10번을 달고있는 미드필더 루카 모드리치 선수에 대해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름 루카 모드리치 Luka Modrić
출생일 1985년 9월 9일
출생지 SFR 유고슬라비아 자다르
172cm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
현 소속팀 레알 마드리드
등번호 10
청소년 클럽 기록 1992-2001  자다르 
2002-2003 디나모 자그레브
클럽 기록 2002-2008  디나모 자그레브
2003-2004  → 즈린스키 모스타르 (임대)
2004-2005  → 인테르 자프레시치 (임대) 
2008-2012  토트넘 홋스퍼 
2012-레알 마드리드
국가대표팀 기록 크로아티아 113경기 14득점

루카 모드리치 ( Luka Modrić lûːka mǒːdrit͡ɕ, 1985년 9월 9일, 자다르 ~) 는 크로아티아의 프로 축구 선수로,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 소속이며, 크로아티아 국가대표팀의 현 주장이다. 모드리치는 주로 중앙 미드필더 역할을 수행하지만, 공격형 미드필더나 수비형 미드필더로도 플레이 가능하며, 보통 딥-라잉 플레이메이커로 배치된다. 모드리치는 동세대 세계 최고의 미드필더들 중 한 명이자] 크로아티아 역사상 최고의 축구 선수 중 한 명으로 널리 손꼽힌다.

자다르 출신으로 모드리치는 고향 구단의 유소년 아카데미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보이고는 2002년에 디나모 자그레브로 이적했다. 그는 자그레브에서도 발전을 거듭해 즈린스키 모스타르와 인테르 자프레시치로 임대를 떠났었다. 그는 2005년 디나모 소속으로 첫 경기를 가진 후, 3시즌 연속 리그 우승과 컵대회 우승을 맛보았으며, 2007년에는 프르바 HNL 올해의 선수로도 선정되었다. 2008년, 그는 프리미어리그의 토트넘 홋스퍼에 입단했다. 가레스 베일과 그는 거의 50년만에 처음으로 구단의 UEFA 챔피언스리그 진출을 이룩했고, 2010-11 시즌에는 대회 8강까지 올려 놓았다.

2011-12 시즌 후, 그는 £33M에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해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의 지휘 하에 소속 구단이 10번째 유러피언컵 우승할 수 있도록 공헌했다. 지네딘 지단이 마드리드에 부임한 후, 모드리치는 2016년부터 2018년까지 팀이 챔피언스리그 3연패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매년 시즌의 팀 일원으로 선정되었다. 2016년 라 리가 시상식에서 두 번째 "최우수 미드필더상"을 받은데 이어, 2017년에는 UEFA 클럽 풋볼 어워드에서 "최우수 미드필더"로 선정되었다. 2015년, 모드리치는 FIFA 세계 XI로 선정된 최초의 크로아티아인이 되었고, 2016년과 2017년에도 같은 업적을 되풀이했으며, 2016, 2017년에는 UEFA 올해의 팀에도 선정되었다.

모드리치는 2006년 3월,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서 크로아티아 국가대표로 첫 경기를 치렀고, 이탈리아와의 친선경기에서 첫 국가대표팀 득점을 기록했다. 그는 이후로 UEFA 유로 2008, 2012, 2016과 2006, 2014, 2018 FIFA 월드컵을 포함해 크로아티아가 본선에 진출한 모든 대회에 참가했다. UEFA 유로 2008에서 그는 대회의 팀 일원으로 선정된 두 번째 크로아티아인이 되었다. 첫 두 월드컵에서는 조별리그 탈락했으나, 2018년 월드컵에서 모드리치는 주장으로서 크로아티아를 사상 첫 결승전으로 이끌며 준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그는 대회 최고의 선수에게 수여하는 골든 볼을 수상했다. 그는 여섯 차례 크로아티아 올해의 축구 선수로도 선정되었는데, 다보르 슈케르와 함께 이 상을 가장 많이 받은 인물이다.

 

루카 모드리치는 1985년 9월 9일 출생해 당시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의 일부였던 크로아티아 사회주의 공화국의 자다르에서 멀지 않은 마을인 자톤 오브로바츠키 인근의 소규모 촌락 모드리츠이의 오두막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그는 항공정비사 스티페 모드리치와 직물 노동자 라도이카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유년 시절은 크로아티아 독립 전쟁 시기와 겹쳤다. 1991년, 전쟁이 고조되자 그의 가족은 고향을 떠났다. 그의 부친은 크로아티아 육군으로 입대했다. 모드리치의 조부 루카와 6명의 어르신 민간인들이 1991년 12월, 크로아티아의 세르비아 반군에게 예세니스 마을에서 처형당했다.

모드리치의 가족은 피난길에 올라 콜로바레 호텔에서 7년을 머물다가 자다르의 이즈 호텔로 이동했다. 수천 개의 수류탄이 도시를 강타하는 당시 축구는 현실 도피의 유일한 수단이었다. 루카 모드리치 본인의 말에 따르면, 그는 당시 다른 많은 아이들을 친구로 사귀고 그의 부모님이 유년 시절에 악영향을 끼치지 못하도록 신경써서 전쟁을 느끼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모드리치는 축구를 시작해, 주로 호텔 주차장에서 공을 찼다. 1992년, 그는 초등학교와 체육 아카데미에 동시에 입학했고, 후자의 경우 가족이 가진 것이 조금밖에 되지 못하는데도 불구하고 입학금을 지원했고, 간혹 삼촌이 지원해주기도 했다. 그의 가족의 지지로, 그는 대표단 훈련에 참가해 자다르에 입단했다.  그는 도마고이 바시치 감독과 토미슬라프 바시치 유소년 아카데미 수장의 지도를 받았다. 토미슬라프 바시치는 모드리치가 "운동계에서 아버지처럼 지내는 인물"로, 모드리치 부친의 형편이 어려웠기에 그에게 목재 정강이 보호대를 만들어 주었다고 말했지만, 모드리치 본인은 이 과거담을 부인하고 있다. 너무 어리고 "체중 미달"이라 판단되었기에, 그는 달마티아 지역의 최고 명문인 스플리트의 하이두크 스플리트와 계약하지 못했다. 이탈리아의 유소년 대회를 비롯해 재능을 몇 차례 선보인 후, 토미슬라프 바시치는 16세가 된 2001년 말에 모드리치가 디나모 자그레브에 입단하도록 도왔다.

디나모 자그레브의 유소년 아카데미에서 한 시즌 지낸 후, 모드리치는 2003년에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프리미어리그의 즈린스키 모스타르로 임대되었다. 이 시기에 그는 자신의 다재다능한 경기 방식을 이용해 불과 18세의 나이에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프리미어리그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다. 모드리치는 이후 "보스니아 리그에서 축구를 할 수 있으면 어디서든지 뛸 수 있다." 라고 자신의 신체 조건을 짚어 말했다. 이듬해, 그는 크로아티아의 인테르 자프레시치로 임대되었다. 그는 그 곳에서 한 시즌을 보냈고, 소속 구단이 크로아티아 1부 리그 준우승을 차지하고, 현 UEFA 유로파리그인 UEFA컵의 예선 진출권을 확보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그는 2004년 크로아티아 올해의 신인 선수로도 선정되었다. 2005년, 그는 디나모 자그레브에 복귀했다.

디나모 자그레브
2005-06 시즌, 모드리치는 디나모 자그레브와 자신의 첫 장기간 계약을 체결했는데, 유효 기간은 10년이었고, 계약으로 나온 급여로 자다르에 살 곳을 장만해 피난민 생활을 청산했다. 그는 디나모의 1군 주전 지위를 확보해, 31경기에 나서 7골을 넣고 리그 우승에 공헌했다. 2006-07 시즌, 모드리치는 비슷한 활약을 펼쳐 디나모의 리그 정상 방어에 일조했는데, 그는 에두아르두 다 시우바의 주요 득점 공급원으로서, 프르바 HNL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다. 그 다음 시즌, 그는 디나모의 UEFA컵 2007-08 경기에 참가해 본선 진출을 정조준했다. 최종 라운드인 플레이오프전에서, 모드리치는 아약스를 상대로 한 2차전 원정 경기에서 페널티킥을 넣었고, 경기는 정규 시간이 지나고 1-1 무승부로 끝났다. 디나모는 연장전 접전 끝에 동료 마리오 만주키치의 두 골이 터지면서 3-2 승리를 거두어 플레이오프전을 통과했다. 그러나, 디나모 자그레브는 조별 리그가 한계였다. 스타디온 막시미르에서 치른 그의 마지막 안방 경기에서, 모드리치는 기립 박수를 받았고, 지지자들은 그의 응원 깃발을 들어올렸다. 그는 디나모에서의 4년 동안 리그에서 31골 29도움을 기록했고, 특히 2007-08 시즌에는 소속 구단의 흐르바츠키 쿠프 우승에 공헌했고, 리그를 28점차로 우승했다. 모드리치는 바르셀로나, 아스널, 첼시의 제의를 받았으나, 결정을 내리기 위해 며칠을 고민했다.

토트넘 홋스퍼

2008–09 시즌

2008년, 첼시와의 경기에 도열한 모드리치
2008년 4월 26일, 모드리치는 토트넘 홋스퍼 이적 조항에 동의했다. 그는 후안데 라모스가 첫 여름 이적 시장에 데려온 첫 선수이며, 이적이 확정된 2008년 여름의 첫 프리미어리그 선수였다. 6년 계약을 체결한 후, 토트넘은 그를 영입하기 위해 £16.5M을 지출했는데, 그에 따라 2007년에 대런 벤트를 영입하며 세운 구단의 최고 이적료 기록과 동률을 이루었다. 모드리치는 8월 16일에 프리미어리그 공식 경기에 출전했는데, 토트넘은 강변 경기장에서 열린 미들즈브러와의 2008-09 시즌 첫 경기에서 1-2로 패했다.

모드리치는 토트넘에 서서히 적응해 나갔다. 그는 초기에 무릎 부상을 당했고, 언론에 의해 "체중 미달"로 낙인찍혔으며, 아르센 벵어도 이 의견에 동조했다. 그의 부진한 기량과 겹쳐, 그 자신과 슬라벤 빌리치 크로아티아 국가대표팀 감독의 우려를 야기했다. 모드리치는 본래 등번호 10번의 역할을 맡았지만, 윌손 팔라시오스와 좌측 측면을 맡도록 임무가 변경되었다. 토트넘 동료였던 톰 허들스톤은 나중에 "그의 다재다능함은 그에게 축복일 수도 저주일 수도 있었지만, 그는 자신의 위치 그 이상으로 활약할 정도로 그렇게 특화되어 있었다"라고 회고했다.

해리 레드냅 감독이 부임하면서, 모드리치는 자신이 더 친숙한 중앙 혹은 좌측으로 치우쳐진 미드필더를 맡았고, 선수단에 더 큰 영향을 더 불어너어 자신의 축구 재능을 더 꽃피울 수 있게 되었는데, 예를 들어 10월 29일, 철천지 원수 아스널과의 경기에서 4-4로 비길 때 보인 활약과 같다. 이 경기를 기점으로, 그의 기량은 획기적으로 향상되었고, 그의 구단이 리그에서 거두는 성적 역시 개선되었다. 레드냅은 모드리치가 그의 선수단에 미치는 영향을 되짚었고, 크로아티아의 플레이메이커를 중심으로 선수단을 새로 개편할 계획이 있다고 밝혔다. 모드리치는 2008년 12월 18일, 스파르타크 모스크바와의 UEFA컵 경기에서 토트넘 첫 공식 골을 기록했고, 경기는 2-2 무승부로 끝났다. 그는 12월 21일 뉴캐슬 유나이티드전에서 첫 프리미어리그 득점을 올렸지만 패했고, 2009년 1월 2일, 안방에서 이긴 위건 애슬레틱과의 FA컵 3라운드 경기와 2009년 4월 25일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원정에서 패한 경기에도 골을 넣었다.

모드리치를 디나모 자그레브 시절의 임무에 맡기면서, 그는 더 효율적으로 영감을 주는 활약을 펼쳤는데, 스토크 시티전과 헐 시티전에서 맹활약을 펼쳤고, 5월 21일 첼시와의 경기에서는 1-0 결승골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2009–10 시즌
2009-10 시즌을 앞두고 레드냅 감독은 모드리치를 언급하며, "[그는] 엄청난 선수이자, 감독들이 원하는 대상이며, 다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는 악마처럼 훈련에 임하고도 불평하지 않는데, 공이 있든 없든 경기장에 배치되면 수비수를 속임수나 패스로 무력화할 수 있다. 그는 상위 4개 구단중 어느 팀으로 가도 이상하지 않고, 그는 이번 시즌에 더 좋은 활약을 펼칠 것이다"라고 장담했다. 2009년 8월 29일, 2-1로 이긴 버밍엄 시티전에서 모드리치는 종아리 부상이 의심되어 경기 도중 빠지게 되었다. 그 다음 날, 몯트리치는 오른쪽 종아리뼈가 골절된 것으로 확인되었고, 그는 6주 동안 현장에 나가지 못하게 되었다. 그는 12월 28일,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와의 런던 더비 경기에 복귀했고, 전에 부상당했던 다리로 11분에 골을 넣어 토트넘의 2-0 승리에 일조했다. 그는 2010년 2월 28일, 에버턴과의 홈경기에서도 골을 기록했고, 번리와의 5월 9일 원정 경기에서 패할 때에도 1골을 추가했다.

2010년 5월 30일, 모드리치는 2016년까지 유효한 6년 짜리 계약을 새로이 맺었다. 그는 "토트넘 홋스퍼는 저에게 프리미어리그에 참가할 기회를 주었고, 여기에서 그들과 큰 성공을 거두고 싶습니다. 예, 다른 대형 구단의 제의도 있었지만, 저는 어디 갈 생각이 없습니다. 지난 시즌 상위 4개 구단으로 끝냈고, 우리가 한 구단으로서의 현 주소를 나타내며, 저는 더 개선하고 토트넘에서 모든 것을 이룩할 것입니다." 라고 말했다.

2010–11 시즌

2010년, 토트넘 경기에 출전한 모드리치.
2010년 9월 11일, 모드리치는 1-1로 비긴 웨스트 브로미치 앨비언과의 원정 경기에서 2010-11 시즌 첫 골을 기록했다. 11월 28일, 리버풀과의 홈경기에서, 모드리치는 나중에 리버풀 수비수의 자책골로 판정된 한 골을 기록했다. 2011년 1월, 화이트 하트 레인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비긴 후, 레드냅은 모드리치에 대해 입을 열며 "그는 믿을 수가 없습니다. 훌륭합니다. 그는 대단한 축구 선수이며, 가장 좁은 공간에 상대에게 둘러싸여도 공을 간수할 수 있으며, 상황을 종결지을 수 있습니다. 그는 세계 어느 상대를 만나도 대적할 수 있습니다"라고 칭찬했다. 모드리치는 4월 9일, 3-2로 이긴 스토크 시티와의 경기에서도 1골을 추가했고, 5월 15일, 안필드의 리버풀을 상대로 2-0으로 이긴 경기에서는 페널티킥을 성공시켰다.

모드리치는 토트넘의 UEFA 챔피언스리그 데뷔 시즌에 선전을 도왔다. 10월 20일, 주세페 메아차에서 벌어진 인테르나치오날레와의 첫 만남에서, 그는 조기에 부상당해 나갔고, 소속 구단은 가레스 베일의 훌륭한 개인기로 추격했지만 3-4로 졌다. 11월 2일, 안방에서 재회했을 때, 모드리치는 넓은 공간을 최대한 활용해 경기를 지배해 나갔다. 그는 판 데르 파르트의 선제골 기회를 창출해 도왔고, 경기는 3-1 승리로 끝났다. 모드리치는 베르더 브레멘과의 다음 경기에서는 토트넘의 추가골을 기록했다. 밀란과 득점 없이 비긴 후, 토트넘은 이어지는 레알 마드리드와의 8강전에서 패해 탈락했다.

모드리치는 2010-11 시즌 동안 32번의 프리미어리그 경기를 뛰어 3골을 넣고 2번의 도움을 주었으며, 경기당 62.5번의 패스로 토트넘 선수로는 가장 많은 경기당 평균 패스를 기록했고, 이 패스의 정확도는 87.4%에 달했다. 시즌 종료 후, 모드리치는 토트넘 홋스퍼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다. 알렉스 퍼거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은 모드리치가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어야 했다고 말했다.

2011–12 시즌
2011년 중, 모드리치는 토트넘의 런던 경쟁 구단인 첼시로부터 처음에 £22M에, 나중에는 £27M 이적 제의를 받았지만, 대니얼 레비 회장에 의해 모두 거절되었다. 제의가 거절된 후, 모드리치는 구단이 "대형 구단"의 제의를 흥미롭게 받아들인다고 대니얼 레비와 "신사적 합의"를 보았으며 런던을 가로 질러 이적할 수 있다면 기꺼이 하겠다고 선언했다. 여름 이적시장이 열린 기간동안 모드리치가 0-3으로 패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첫 경기를 치르는 것을 거부하면서 그의 거처가 추측이 대상이 되었다. 모드리치는 그의 "머리가 잘못된 곳으로 왔다" 라며 첼시로의 이적 시도를 강행했다. 이적 시장 마지막 날, 첼시의 £40M 제의가 또다시 거절되었다.

이적에 실패한 후, 해리 레드냅 감독은 모드리치에게 자신의 임무에 집중하도록 말했고, 그는 주전으로 배치되었다. 9월 18일, 리버풀과의 안방 경기에서 토트넘 시즌 1호골을 넣었는데, 그는 22미터 거리에서 골을 넣어 4-0 승리에 일조했다. 2012년 1워 14일, 모드리치는 울버햄프턴 원더러스와의 경기에서도 한 골을 넣어 1-1로 경기를 끝냈다. 1월 31일, 위건 애슬레틱과의 경기에서는 첫 골을 긴 패스로 돕고, 추가골을 18미터 거리에서 직접 넣어, 3-1 승리를 견인했다. 같은 경기에서 그는 그는 "이 주의 팀" 일원으로 선정되었다. 모드리치는 볼턴 원더러스와의 5월 2일 원정 경기 막판에 지면에 공이 떨어지기 전에 강하게 차 22미터 전방의 골문을 열었고, 경기는 4-1 압승으로 끝났다.

레알 마드리드
2012–13 시즌
2012년 8월 27일, 레알 마드리드는 토트넘과 협상 끝에 £30M대의 이적료로 합의를 보았다고 발표했다. 모드리치는 스페인 구단과 5년 계약을 체결했다. 이틀 후, 그는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벌어진 바르셀로나와의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2012 2차전 경기에서 메수트 외질과 83분에 교체로 들어가 첫 공식 경기를 치렀다. 마드리드는 이 경기에 이겼고, 모드리치는 구단 합류 발표가 난 지 36시간 만에 새 거처에서 첫 트로피를 획득했다. 첫 경기를 긍정적으로 치렀지만, 주제 모리뉴 감독 체제에서 애로가 많았는데, 그가 시즌 전 기간동안 오랜 협상에 참가하면서 시즌 전 훈련이 부족했던 것이 요인으로 추정되었다. 베테랑 미드필더들인 샤비 알론소와 사미 케디라가 수비형 미드필더로, 메수트 외질이 공격형 미드필더로 배치되어, 모드리치의 입지는 부족했고, 처음 몇 달 동안 대게 교체로 출전하거나 자신에 맞는 임무 외의 것을 주로 수행했다. 그의 첫 레알 마드리드 UEFA 챔피언스리그 경기는 9월 18일 맨체스터 시티전으로, 마드리드가 3-2로 이겼다. 11월 3일, 모드리치는 레알 사라고사와의 라 리가 경기에서 막판에 확인사살골을 넣어 4-0 승리에 마침표를 찍었다. 11월 17일, 모드리치는 50미터 전방으로 공을 찔러넣어 카림 벤제마의 골을 도왔지만, 나중에 혼 아우르테네체 보르데의 자책골로 정정되었다. 이 골은 아틀레틱 빌바오전 선제골로, 경기는 5-1 완승으로 끝났다. 그가 치른 가장 인상적인 경기는 12월 4일, 아약스와의 UEFA 챔피언스리그 2012-13 조별 리그 경기로, 그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호세 카예혼이 넣은 골을 멀리서 배급해주어 도왔고, 경기는 4-1 승리로 끝났다.


2013년, 세비야를 상대하는 레알 마드리드의 모드리치.
2013년 3월 2일, 모드리치는 리그의 최대 경쟁 구단인 바르셀로나와의 안방 경기에 레알 마드리드의 선발진 일원으로 출전했다. 그는 코너킥으로 세르히오 라모스의 82분 결승골을 도와 레알 마드리드의 고전 더비 경기 승리에 일조했다. 3월 5일, 모드리치는 올드 트래퍼드에서 벌어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10명의 선수들과의 UEFA 챔피언스리그 원정 16강 2차전 경기에 후반전 교체로 나왔다. 마드리드가 한 골 끌려가는 와중에, 모드리치는 22미터 지점의 먼 거리에서 골망을 갈라 승부를 원점으로 돌려 경기의 승패를 좌우했고, 레알 마드리드는 2-1로 이겨 합계 3-2로 8강에 진출했다. 이 경기는 모드리치의 레알 마드리드 생활에 전환점을 마련했다. 3월 16일, 그는 마요르카전에서도 비슷하게 훌륭한 활약을 펼쳤는데, 27미터 지점에서 공이 지면에 내려오기 전에 강하게 차 넣어 레알 마드리드가 앞서나가기 시작했다. 경기는 레알 마드리드의 5-2 승리로 끝났다. 모드리치는 도르트문트와의 UEFA 챔피언스리그 2연전에서 모두 선발로 나섰다. 4월 24일에 벌어진 1차전에서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임무를 수행했지만, 경기에 별로 큰 영향을 미치치 못하였고, 1-4 패배로 끝났다. 4월 30일, 2-0으로 이긴 2차전에서는 후방 플레이메이커를 맡아, 공격진에게 패스를 공급하고 여러 차례 기회를 창출했다. 그는 이 경기에서 가장 좋은 평점을 받은 선수였다. 2013년 3월을 기점으로 모드리치가 중원에서 미치는 영향은 계속해서 커져갔고, 그는 선수단 내에서 가장 많은 패스를 공급한 선수로 기록되었다. 5월 8일, 그는 코너킥으로 선제골을 도왔고, 4번째 골을 스스로 넣어 말라가전 6-2 승리에 공헌했다.

2013–14 시즌

2013년, 9월 28일,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의 라 리가 경기에 임하는 모드리치
카를로 안첼로티 신임 감독이 지휘봉을 잡으면서, 모드리치는 더 많은 출전 기회를 보장받았고, 수비와 공수에 균형을 이루기 위해 알론소와 중원에 짝지어졌다. 그는 꾸준히 선수단 내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패스를 공급하는 선수로, 라 리가 통계에 의하면 정확도가 90%에 육박했으며, 선수단 내에서 가장 많은 공을 회수하기도 했다. 그는 쾨벤하운과의 UEFA 챔피언스리그 조별 리그 최종전에서 시즌 1호골이자, 이적 이후 통산 5번째 골을 기록했는데, 이 5골이 모두 페널티 구역 밖에서 나왔다. 모드리치는 3-0 승리를 거둔 헤타페와의 원정 경기에서 스페인 리그 시즌 1호골을 득점했고, 이는 그의 페널티 구역 밖에서 기록한 6번째 골이었다. 모드리치는 코파 델 레이 2013-14 결승전에 레알 마드리드 측으로 출전한 선수로, 이 경기에서 바르셀로나를 2-1로 이겼다.

UEFA 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에서, 모드리치는 공을 가로챈 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쐐기골을 도왔고, 레알 마드리드는 안방에서 도르트문트를 3-0으로 완파했다. 이 골은 승부처가 되었는데, 레알 마드리드는 2차전에서 0-2로 패했지만, 합계 3-2로 앞서면서 다음 라운드 진출에 성공했다. 구단에서의 100번째 경기에서, 모드리치는 선제골을 도와 바이에른 뮌헨과의 UEFA 챔피언스리그 준결승 2차전 4-0 승리에 공헌해, 레알 마드리드가 12년만에 처음으로 결승에 진출하게 만들었다. 그는 준결승 1, 2차전에 모두 UEFA 이 주의 팀 일원으로 선정되었다. 모드리치는 5월 24일에 열린 2014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경기에서 또다시 코너킥으로 동료 세르히오 라모스의 93분 동점골을 도왔다. 레알 마드리드는 연장전 끝에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4-1로 이기고 구단의 10번째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의 오랜 염원을 이룩했다. 그는 UEFA 챔피언스리그 시즌의 팀에 이름을 올렸고, LFP 시상식에서 스페인 라 리가 "최우수 미드필더"로 선정되었다.

2014–15 시즌
2014년 11월, 모드리치는 레알 마드리드와 2018년까지 유효한 계약을 새로 맺었다. 알론소가 떠나면서, 그는 새로 들어온 토니 크로스와 협력하게 되었다. 레알 마드리드는 세비야와의 UEFA 슈퍼컵에서 이기는 것으로 시즌을 시작했고, 모드리치는 두 차례 베일의 득점을 도왔는데, 한 번은 레알 소시에다드와의 라 리가 경기에서, 또 한 번은 바젤과의 UEFA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였다. 2-0으로 이긴 비야레알과의 원정 경기에서는, 모드리치가 페널티 구역 외곽에서 통산 7호골을 기록했다.

11월 말, 모드리치는 이탈리아와의 국가대표팀 경기에서 허벅지 부상을 당한 채 돌아왔고, 그는 3달 간 활동하지 못했다. 그는 2015년 3월 초에 복귀해 7경기를 선발로 나서며 기량이 녹슬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4월 21일, 3-1로 이긴 말라가와의 안방 경기에서, 그는 오른쪽 무릎의 인대가 늘어나면서 5월까지 또 휴식을 취하게 되었다. 그의 부상으로, 이 시즌에 기록한 레알 마드리드의 22경기 연승 행진이 끝났다. 그의 부재와 주전 선수들과 교체 요원들과의 실력 격차 문제는 레알 마드리드의 라 리가와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실패로 직결되었다. 안첼로티 감독은 "새 해가 시작하고 나서 대부분의 경기에서 모드리치의 부재를 뼈저리게 느꼈고, 큰 대가를 치렀습니다"라고 말했다. 모드리치가 경기에 끼치는 영향이 확인되었고, 그는 프로 선수들에 의해 FIFA 세계 XI로 선정되었다.

2015–16 시즌
안첼로티의 후임으로 라파엘 베니테스가 되었고, 그의 임기에 모드리치는 주요 미드필더로서의 활약을 이어나갔다. 모드리치는 9월, 11월, 그리고 12월에 돕는 것으로 시작되었고, 4-3으로 이긴 샤흐타르 도네츠크와의 UEFA 챔피언스리그 원정 경기에서는 득점을 추가했다. 10월 국가대표팀 경기에서 서혜부 근육 부상을 당한 후, 그는 2주에서 3주간 빠질 것으로 전망되었으나, 파리 생제르맹과의 10월 20일 경기를 일정에 맞추어 완쾌해 복귀했다.

지네딘 지단이 2016년 1월에 새로이 지휘봉을 잡으면서, 두 선수-감독관의 관계는 언론에 밝혀진 바로, 모드리치가 "경기의 달인"으로 묘사된 것으로 보여졌고, 공격과 수비 간의 중추적인 "연골 고리"로 임무를 수행했다. 처음 세 경기인 데포르티보전, 스포르팅 히혼전, 그리고 레알 베티스전에서 앞의 두 경기는 비기고, 남은 한 경기는 비기면서, 모드리치는 기회 창출 능력, 위치 선정, 그리고 경기에 영향력을 미치는 전체적 성과로 찬사를 받아 그 가치가 증명되었다. 2월 7일, 모드리치는 페널티 구역에서 또 득점을 올려 그라나다 원정 경기 2-1 승리에 일조했다.

그는 UEFA 챔피언스리그 2015-16의 우승 주역으로 활약했다. 그는 UEFA 챔피언스리그와 라 리가 시즌의 팀에 이름을 올렸다. 그는 LFP 시상식에서 생에 두 번째로 라 리가 "최우수 미드필더"에 선정되었다. 그는 생애 두 번째로 FIFA 세계 XI의 일원으로 선정되었고, 처음으로 UEFA 올해의 팀 일원이 되었다.

2016–17 시즌
10월 18일, 모드리치는 레알 마드리드와의 계약을 연장해 2020년까지 구단과 동행하게 되었다. 9월 중순, 모드리치는 왼쪽 무릎 부상을 당해 11월 초까지 8경기에 결장했다.[140] 12월 18일, 선수단과 함께 FIFA 클럽 월드컵 2016을 우승하고, 뛰어난 활약을 펼쳐 실버 볼을 받았다. 2017년 3월 12일, 베티스에 2-1로 이긴 경기에서, 모드리치는 레알 마드리드 소속으로 200번째 경기를 치렀다.

그는 마드리드의 2016-17 시즌의 라리가와 UEFA 챔피언스리그 2016-17의 우승 과정에 주연으로 활약했고, 후자 대회의 결승전에서는 호나우두의 추가골을 도왔다. 그는 UEFA 챔피언스리그 올해의 팀 일원으로 선정되었다. 모드리치는 UEFA 챔피언스리그를 3번 우승한 최초의 크로아티아인이 되었다. 그는 UEFA 클럽 축구 시상식에서 UEFA 챔피언스리그 최우수 미드필더상을 받았고, FIFA 세계 XI에 생애 3번째로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UEFA 올해의 선수 경쟁에서는 4위를, 2017 발롱도르에서는 5위를 차지했다.

2017–18 시즌
모드리치는 새 시즌 시작을 앞두고 본래 자신이 쓰던 19번 유니폼을 대신해 화려한 이력을 지니고, 하메스 로드리게스가 바이에른 뮌헨으로 떠나게 되면서 공석이 된 10번 새 주인이 되었다. 12월, 그는 선수단과 함께 FIFA 클럽 월드컵 2017을 우승하고, 뛰어난 활약을 펼쳐 골든 볼을 받았다. 그의 시즌 첫 번째 골은 7대 1로 승리한 데포르티보와의 1월 21일 경기에서 나왔다. 모드리치는 리버풀과의 UEFA 챔피언스리그 2017-18 결승전에 선발로 나서 팀의 3연패를 달성했고, 3년 연속 UEFA 챔피언스리그 올해의 팀 일원으로 선정되었다. 2018년 7월, 모드리치의 레알 마드리드 유니폼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이탈리아 클럽 유벤투스로 떠난 후 팀에서 가장 많이 팔린 것으로 보도되었다.

국가대표팀 경력

2013년 6월 10일 친선전에서 포르투갈의 조앙 모티뉴와 공을 경합하는 모드리치
모드리치는 여러 연령대의 청소년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했는데, 그는 크로아티아의 U-17, U-19, 그리고 U-21 대표로 출전한 경험이 있다. 그는 2006년 3월 1일, 스위스 바젤에서 열린 아르헨티나와의 친선경기에서 크로아티아 성인 국가대표팀 신고식을 치렀고, 이 경기에서 크로아티아가 3-2로 이겼다.

2006년 FIFA 월드컵
모드리치는 2006년 FIFA 월드컵 본선에 두 경기 출전했는데, 그는 일본과 오스트레일리아와의 조별 리그 경기에 교체로 나섰다. 슬라벤 빌리치가 신임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모드리치는 국가대표팀 경기에 더 중요한 존재가 되었다. 그는 2006년 8월 16일 리보르노에서 이탈리아와 친선전을 벌여 크로아티아 국가대표 첫 골을 넣어 2-0 승리를 도왔다.

UEFA 유로 2008
모드리치는 맹활약으로 국가대표팀에서의 한자리를 확고이 했다. 그는 인상적인 활약으로 크로아티아의 UEFA 유로 2008 예선전을 성공리에 끝냈는데, 이 중에는 잉글랜드에 안방과 원정에서 모두 이긴 것도 포함한다. 신예 미드필더로, 다수는 모드리치를 기대주로 꼽았다. 그는 대체로 "크로아티아의 크라위프"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모드리치는 크로아티아의 UEFA 유로 2008 첫 골을 기록했는데, 2008년 6월 8일, 오스트리아와의 경기에서 4분에 페널티킥을 성공시켜 1-0 승리를 이끌었다. 그는 UEFA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 역사상 최단시간 페널티킥을 성공시켰다. 그는 대회 전부터 우승 후보로 지목되었으며 나중에 준우승을 차지한 독일과의 다음 조별 리그 경기에서도 인상적인 활약을 이어가 크로아티아의 승리를 이끌었고, UEFA에 의해 경기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었다. 터키와의 8강전에서, 모드리치는 연장 종료까지 1분을 남겨놓은 상황에서 터키의 노련한 뤼쉬튀 레츠베르 골키퍼의 실책을 이용해 동료 이반 클라스니치가 선제골을 넣을 수 있도록 공을 띄워주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세미흐 셴튀르크에게 동점골을 허용했다. 이어지는 승부차기에서, 모드리치는 첫 주자로 나왔지만 멀리 날려 실축했고, 여기서 터키한테 1-3으로 졌다. 대회 후, 모드리치는 UEFA 대회의 팀으로 이름을 올렸고, 그는 다보르 슈케르에 이어 이 명단에 이름을 올린 두 번째 크로아티아인이 되었다.

UEFA 유로 2012
2010년 FIFA 월드컵 예선전에서 모드리치는 카자흐스탄, 안도라, 그리고 우크라이나와의 경기에서 총 3골을 넣어 이비차 올리치, 이반 라키티치, 그리고 에두아르두 다 시우바와 함께 크로아티아의 예선 최다 득점자가 되었다. 그러나, 크로아티아는 우크라이나에게 밀려 플레이오프전도 못 치르고 탈락했다. UEFA 유로 2012 예선전 경기에 모두 출전하고 이스라엘전에 득점한 모드리치는 아일랜드, 이탈리아, 그리고 스페인과의 본선 조별 리그 경기에 출전했지만, 다음 라운드에 진출하지 못했다. 그가 가장 인상적인 활약을 펼친 경기는 스페인전이었다. 그는 경기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아 빌리치 감독은 모드리치의 활용을 극대화해 스페인 축구의 강세에 저항하려 들었다. 모드리치는 이 경기에서 가장 인상적인 순간이 왔는데, 공을 중앙선 부근에서 잡은 뒤 스페인 중원 3인방을 지나쳐 우측으로 질주하여 페널티 구역에 도달한 뒤, 또다시 수비수를 제치고, 이반 라키티치에게 16미터 크로스를 넘겼지만, 이케르 카시야스가 라키티치의 슛을 막았다. 크로아티아가 조별 리그를 통과하지 못함에 따라, 모드리치는 대회의 팀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지만, 텔레그래프는 그를 준결승전 전까지 그를 최우수 11인에 이름을 올렸고, 그의 활약상은 평론가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2014년 FIFA 월드컵
모드리치의 크로아티아는 플레오프전 끝에 2014년 FIFA 월드컵 본선행을 확정지었다. 크로아티아는 브라질, 멕시코, 그리고 카메룬과 A조에 들어갔다. 크로아티아는 브라질과 개막전에서 맞대결을 펼쳤지만, 1-3으로 패했고, 모드리치는 경미한 발부상을 입었다 크로아티아는 2차전에서 4-0으로 이겨 반동했지만, 멕시코와의 최종전에서 1-3으로 패해 크로아티아 국민들의 높은 기대에도 불구하고 결선 진출에 실패했다.

UEFA 유로 2016
UEFA 유로 2016 예선전에서 모드리치는 3년 만에 처음으로 크로아티아 국가대표팀 골을 올렸는데, 그의 29번째 생일날 몰타를 상대로 장거리에서 때려 득점을 올렸고, 아제르바이잔과의 경기에서는 페널티킥으로 1골을 추가했다. 2015년 3월 3일, 모드리치는 생에 처음으로 국가대표팀 경기에 주장 완장을 차고 임했고, 아제르바이잔 원정에서 무승부를 거두었다.

대회 본선에서, 모드리치는 터키와의 크로아티아 조별 리그 1차전 경기에서 지면에 착지하지 않은 공을 25미터에서 결승골로 때려넣었다그리 함으로서, 그는 두 차례의 UEFA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득점을 기록한 최초의 크로아티아인이 되었는데, 그는 앞서 2008년 대회에서 오스트리아를 상대로 골을 넣었었다. 그는 경기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었다.

2018년 FIFA 월드컵
크로아티아의 2018년 FIFA 월드컵 유럽 지역 예선 I조에서 모드리치는 2번째 예선에서 그리스를 상대로 페널티골을 득점하여 월드컵을 위하여 자신의 팀이 합격할 수 있도록 하였다. 크로아티아는 아르헨티나, 아이슬란드와 나이지리아의 곁에 D조에 놓였다. 토너먼트가 열리는 동안 동료 선수 이반 라키티치와 마리오 만주키치와 더불어 모드리치는 크로아티아의 두번째 "황금 세대"로서 언급되었다. 나이지리아를 상대로 크로아티아의 오프닝 우승에서 모드리치는 다시 한번 성공적으로 페널티골을 득점하고 "매치의 남자"로 임명되었다. 그는 또한 이어서 25 야드 (23m)로부터 장거리에 달하면서 크로아티아의 아르헨티나에 3 대 0의 우승에서도 득점하여 "매치의 남자"로 다시 임명되었다. 아이슬랜드를 상대로 최종의 조별 경기에서 나오면서 토너먼트의 전반전에서 그의 상연들은 조별 경기의 최고 선수로서 포포투, 데일리 텔레그래프와 ESPN에 의하여 그를 랭킹에 놓은 것을 보았다.

7월 1일 덴마크를 상대로 16강전에서 1 대 1로 비기면서 모드리치는 연장의 후반전에서 페널티 지역으로 데려와진 안테 레비치를 위하여 골을 득점하는 기회를 창조하였으며, 모드리치는 페널티를 차지하려고 속행하였으나 그의 스트라이크는 카스페르 슈마이켈에 의하여 세이브 되었다. 하지만 뒤이어 일어난 페널티 총격전이 열리는 동안 모드리치는 자신의 페널티킥을 득점하는 데 제법 해내고 페널티에서 3 대 2의 승리에 이어 8강전으로 진출하였다. 7월 7일 개최국 러시아를 상대로 준준결승전에서 모드리치는 코너킥으로부터 도마고이 비다를 위하여 연장전에서 보조를 마련하고, 2 대 2의 비김에 이어 승리적인 페널티 총격전에서 다시 한번 득점하였다. 그는 토너먼트에서 3번째로 "매치의 남자"로 임명되었다. 7월 11일 잉글랜드를 상대로 준결승전에서 크로아티아는 연장전에서 2 대 1의 승리에 이어 역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결승전에 진출하였다. 결승전에 열리기 2일 전 모드리치가 여러 선수의 가장 많은 마일을 달리고 하나의 매치에 가장 많은 드리블은 물론 창조된 챈스들에 의하여 3위를 하고, 자신의 팀에서 상대 선수의 절반에서 패스를 완료하였다고 보고되었다. 7월 15일 결승전에서 크로아티아가 프랑스에게 4 대 2로 패하였어도 모드리치는 토너먼트의 최고 선수로서 골든볼 상을 수상하였다. 자그레브에서 크로아티아 팀의 큰 환영 후, 모드리치와 그의 동료 선수들은 그의 고향 자다르에서 수만명의 관중들에 의하여 환영을 받았다.

작은 신체 조건의 미드필더인 모드리치는 기민하고 창조적인 플레이메이커로 수식되며, 넓은 시야를 이용해 능숙하게 공을 넘겨 경기의 흐름을 바꾸거나 홀로 먼 거리에서 골문을 열 수 있다.그는 양발을 모두 활용할 수 있으며, 이는 민첩함과 공 없을 때에 공격적인 위치 선정 능력과 겹쳐져 강인함이 배가된다. 그는 거리를 막론하고 공을 넘길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인 것 외에도, 발 바깥쪽도 쓸 수 있고, 공다루기, 공 잡기, 위치 선정, 그리고 공의 점유와 경기 속도의 조절에도 두각을 나타낸다. 전에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약했던 그는 멀리 공을 보낼 수도 공을 끌고 갈 수도 있으며,"빠른 도움"의 달인으로도 평가된다.

배치
모드리치의 복잡하게 풀어나가는 방식은 자신의 소속 구단에서 꾸준히 성공을 거두는데 밑바탕이 되었다. 비록 처음에 디나모 자그레브 시절과 토트넘 홋스퍼 초기에 중앙 미드필더나 공격형 미드필더를 담당했지만, 2010-11 시즌에는 공격을 조율하고 동료의 득점 기회를 창출하는 후방 플레이메이커로 중원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중앙 미드필더임에도 불구하고, 모드리치는 근면한 선수로, 플레이메이커 역할 외에도 수비형 미드필더직을 수행해 후방으로 내려가 상대의 공을 빼앗아 재빠른 역습의 시발점이 되기도 해, 세계에서 가장 범용성이 높은 선수로 평가되었고, 다수의 중원 보직을 수행하는데 부담을 드러내지 않았다. 조너선 윌슨은 4-2-3-1 배치 체계에서 모드리치가 3선의 수비형 미드필더로, 창조자나 파괴자 둘 다 아니나, 뒤에서 쇄도하거나 발로 공을 끌고가는 조율형 미드필더라고 언급했다.

더 후방에 배치되면서, 그의 득점과 도움 횟수는 줄어들었고, 경기당 득점 시도 횟수도 1.2로 감소했지만, 그는 경기에서 더 이상 득점에만 목매지 않게 되었다. 또한, 그는 선수단 내 경기당 알짜 패스 횟수가 2.06으로 2위이고, 패스 성공률도 87%로 높으며, 경기당 패스 횟수도 62.5회로 최고로, 경기당 드리블 2.2회로 가장 공을 잘 끌고 가며, 가로채기도 2.5회, 그리고 태클도 1.9회로 통계적으로 그는 프리미어리그 내의 최상위권 미드필더로 분류되었다. 2011-12 시즌에는 샤비 알론소, 안드레아 피를로,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샤비와 더불어 통계적으로 벌써 5대 리그의 중앙 및 다목적 미드필더들 중 최상위권으로 평가되었다.

레알 마드리드 입단 후, 그가 맡는 중원 보직은 등번호 6번, (수비) 8번, (중앙) 10번 (공격) 에 해당하는 보직으로 전술에 따라 다르게 배치되었고, 2012-13 시즌에 맡은 주 임무는 샤비 알론소와 후방 플레이메이커를 담당했는데, 고전적인 플레이메이커로, 창조성을 이용해 상대 수비를 해체하는데 능력을 썼다. 2013-14 시즌 전반기에는 알론소와 앙헬 디 마리아와 중원에서 효율적으로 협력했는데, 모드리치는 56회로 라 리가에서 레알 마드리드 선수단 내 태클 1위를 기록했고, 이는 경기당 2.86에 해당하는 수치였고, 878번 상대 진영에서 공을 건내 이 부문에서도 레알 마드리드 선수단 내 1위를 기록했고, 90%로 리그 내 최고 패스 정확도를 자랑했으며, 이 기록은 유럽 5대 리그에서 5회 이상 도움을 기록한 선수로는 최고에 해당하는 통계치였다. 2014-15 시즌, 토니 크로스의 합류로, 레알 마드리드는 공격 자원을 많이 보유하게 되었지만, 중원에 더 이상 효율적이며 공을 따내는데 천부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선수가 없게 되었다. 따라서, 60.7회에서 64.7회로 경기당 최다 역습 전개 패스를 구사했으며, 알짜 패스도 경기당 0.8회에서 1.2회로 선수단 내 최다였지만, 모드리치와 크로스 모두 수비를 부담하면서 선수단의 중원을 조율해 역습을 전개해 나갔다. 모드리치의 시즌 평균 패스 성공율은 91.6%에서 92% 사이였고, 그가 최고 패스 성공율을 기록한 경기는 바르셀로나와의 10월 경기로, 42번의 패스를 100% 정확하게 배급했다. 2014년을 통틀어, 모드리치는 75번 공을 끌고 갔는데, 성공률은 76%로, 이 부문에서 유럽 5대 리그 2위였다.

평가

2013년 포르투갈전에 임하는 모드리치. 그는 국가대표팀에서 가장 다재다능하고 중요한 선수로 고려된다.
모드리치는 세계에서 가장 완성도가 높은 최고의 미드필더로 평가받는다. 조너선 윌슨은 모드리치가 후안 로만 리켈메와 같은 기존의 플레이메이커 (체너) 와 다른 점은 발레리 로바놉스키와 아리고 사키가 현대 축구인의 필수 요소라 주장한 수비 가담 능력을 지녀 범용성이 뛰어나다는 데에 있다고 평했다.

모드리치의 경기에서의 활약은 드라간 스토이코비치 (피크시) 가 알아보고 다음과 같이 입을 열었다: "저는 제가 하는 방식대로 경기에 임하는 작은 금발 소년을 봤습니다. 그가 현장에서 선보인 생각은 환상적이었습니다."[207] 피크시는 그를 샤비와 안드레스 이니에스타와 함께 가장 지적인 선수로 고려했다.프레드라그 미야토비치는 모드리치가 "호날두와 함께 마드리드 최고의 선수"라고 치켜세웠다.요한 크라위프는 모드리츠의 경기에서의 활약과 영향은 그가 얼마나 자유로운지와 상관이 있다고 말했다.] 모드리치와 수 차례 마주쳤던 폴 스콜스는 맨체스터 이브닝 뉴스와의 2011년 인터뷰에서 "세 명 (사미르 나스리와 베슬레이 스네이더르와 함께) 중, 모드리치는 저에게 가장 강한 인상을 심어준 선수였고, [그리고] 토트넘을 상대할 때, 그는 우리가 상대한 진짜 상대였습니다"라고 회고했다. 2014년, 지네딘 지단은 모드리치를 경기에 임하는 현역 최고의 11인 중 한 명으로 꼽았다.2017년, 로베르트 프로시네치키는 모드리치를 슈케르와 더불어 크로아티아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꼽았다.

레알 마드리드의 주제 모리뉴 전 감독은 그가 경기에 미치는 영향력, 전술적 수준, 그리고 "예술적 인지력"이 있기에 모드리치 영입을 원했다고 밝혔다. 2012년, 카를로 안첼로티는 "모드리치는 뛰어난 선수이며, 제 주관적인 생각으로, 그는 한 임무 외에도 다른 임무를 수행할 수 있어서 최고의 현역 미드필더들 중 한명이라 생각한다."라고 말해 모드리치의 미드필더로서의 기술 및 다재다능함에 찬사를 보냈다.알렉스 퍼거슨도 그가 프리미어리그에서 뛰던 시절에 높게 평가한 선수였는데, 폴 스콜스와 견주어 봐도 손색이 없다고 말했으며, 두 선수 모두 지적인 축구 선수로 좋은 패스를 꾸준히 공급해주며, 경기를 지배하며, 신사적으로 경기한다고 덧붙였다.슬라벤 빌리치 감독은 모드리치가 "다른 선수를 향상시키는 선수로, 모두가 그와 동행함으로써 이득을 얻습니다. 그는 이기적이지 않고, 전체를 위해 경기합니다 ... 그는 완벽한 선수입니다. 수비에 좋고, 공격에 좋고 - 그는 천부적으로 공을 발에 달고 태어난 듯합니다." 라고 언급했다. 모드리치를 칭찬한 다른 감독으로는 주제프 과르디올라와 스벤-예란 에릭손이 있다.

사생활
2010년 5월, 모드리치는 바냐 보스니치와 4년 간의 동행 끝에 크로아티아 수도 자그레브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그의 전 동료였던 베드란 초를루카가 그의 주례를 맡았다.[221] 둘 사이에 장남 이바노가 2010년 6월 6일에 출생했다. 2013년 4월 25일, 둘째로 딸 에마가 태어났다.[2017년 10월 2일에는 소피아를 득녀했다.] 모드리치는 대체로 가족과 조용한 삶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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