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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마냐 마티치

I LOVE SOCCER 2019. 4. 28. 13:02

네마냐 마티치

 

안녕하세요! 오늘은 세르비아의 국가대표 축구선수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활약중인 미드필더 네마냐 마티치 선수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름 네마냐 마티치 Немања Матић Nemanja Matić
출생일 1988년 8월 1일
출생지 유고슬라비아 샤바츠
194 cm
포지션 수비형 미드필더
현 소속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등번호 31
청소년 클럽 기록 1993-1997  브렐로 
1997-2000  오브레노바츠 1905 
2000-2004  츠르베나 즈베즈다
2004  파르티잔 
2004-2005 FK 예딘츠보 Ub
클럽 기록 2005-2007  콜루바라 
2007-2009  코시체 
2009-2011  첼시 
2010-2011  → 피테서 (임대) 
2011-2014  벤피카 
2014-2017  첼시 
2017-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국가대표팀 기록 세르비아 46경기 출장 2득점 

 

 

 

2004년, 16세의 나이로 마티치는 FK 콜루바라의 1군에 합류하였다. 마티치는 3시즌동안 16경기에 출장하였다. 그는 베오그라드 세르비아 리그 (3부리그) 에서의 인상적인 활약 후, 그는 슬로바키아 수페르리가의 MFK 코시체로 이적하였다. 그는 67번의 슬로바키아 리그 경기에 참여하여 4골을 기록하였고, 소속팀이 2008-09 시즌을 4위로 마감하는데 공을 세웠다. 그는 세넥의 NTC 세넥에서 벌어진 슬로박 컵 결승전에서도 FC 페트르잘카 1898를 꺾고 소속팀이 우승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코시체는 3-1로 승리하여 UEFA 유로파리그의 첫 시즌에 우승할 수 있게 되었다.

네마냐는 이중국적자이다. 그는 세르비아 출신임에 따라 세르비아 시민권을 가지고 있고, 나중에 슬로바키아 시민권도 획득하였다. 2008-09 시즌 프리미어리그 트라이얼을 거친 뒤 미들즈브러 FC가 가장 먼저 그를 영입하였다. 그러나, 트라이얼은 덴마크전을 앞둔 세르비아 국가대표팀의 차출로 인해 중단되었다. 2009년 여름, 마티치가 프리미어리그의 토트넘 홋스퍼 FC나 첼시 FC로 이적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첼시 FC
2009년 8월 18일, 마티치는 £1.5M의 가격에 첼시 FC와 4년 계약을 체결하였다. 그는 24번 유니폼을 받았지만, 그는 UEFA U-21 챔피언쉽에서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데뷔가 연기되었다. 그는 2009년 9월 23일, 1-0 승리로 끝난 퀸즈 파크 레인저스 FC와의 리그 컵 경기에서 벤치를 지켰다. 마티치는 2009년 11월 21일, 울버햄프턴 원더러스 FC전에서 69분 플로랑 말루다와 교체 투입되어 데뷔전을 치루었고, 팀은 4-0 승리를 거두었다.그는 위건 애슬레틱 FC와의 2009-10시즌 리그 마지막 경기에 출장하였고, 이날 첼시는 8-0로 크게 이겨 프리미어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피테서
2010년 8월 23일, 마티치는 첼시 동료 슬로보단 라이코비치와 마테이 델라치와 함께 에레디비시의 피테서로 1년동안 임대되었다

벤피카
2011년에는 첼시가 다비드 루이스를 영입하면서 그 대가로 벤피카로 팀을 옮겼다.

첼시로의 복귀
1월 겨울이적시장을 통해 첼시로 다시 복귀하였다. 복귀 후 첫 선발인 fa컵 스토크 시티 FC전에서는 팀의 1:0 무실점 승리를 이끌어내는 활약을 펼치며 좋은 신호탄을 올렸다. 그리고 그는 2014년 2월 4일 맨체스터 시티와의 리그 경기에서 다비드 루이스와 더블 볼란치를 이뤘는데 엄청난 활동량과 피지컬, 높이(다비드 루이스 189cm,마티치 194cm)로 상대 맨시티의 최고 선수 야야 투레를 완벽히 봉쇄하면서 밀리지 않는 중원 싸움을 보여주었다. 리그 레이스에 중요한 결전인 이 맞대결 mom으로 선정 되면서 마티치라는 이름 세 글자를 세상에 알렸다. 그 후로 그는 매경기 기복 없는 좋은 경기력을 펼치며 첼시의 수비 불안, 중원 문제를 한꺼번에 덜어 내줬고 2014/2015시즌 시작전에 영입된 세스크 파브레가스와 더블 볼란치를 이뤄 현재 세계 최고 수준의 중원을 이뤘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16-17 시즌 후, 첼시가 모나코에서 티에무에 바카요코를 영입하자, 입지가 좁아진 마티치는 첼시의 프리 시즌 투어에 제외되었고, 2017년 7월 31일(한국시각)에 영국 공영 방송 BBC를 통해 4000만 파운드(약 588억 원)의 이적료를 기록하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3년 계약을 맺고 이적하였다. 이로써 마티치는 수비형 미드필더 중 역대 두 번째로 높은 이적료를 기록했으며, 지난 시즌 아스날로 이적한 그라니트 샤카 (4500만 유로) 다음으로 마티치가 4470만 유로로 뒤를 이었다.

2017년 8월 14일(한국시각 자정)에 열렸던 웨스트 햄과의 리그 개막전 경기 때 미드필드에서 굳건한 수비력을 선보였다. 경기 후, 전 세계 팬들을 상대로 실시한 투표에서 74%의 득표율을 얻어 맨 오브 더 매치(Man Of the Match) 선정되었으며, 현지 언론으로부터 평점 9점을 받았다.

마티치는 2018년 3월 6일 새벽 5시(이하 한국 시간), 영국 셀허스트 파크에서 열린 2017-2018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29라운드 크리스털 팰리스를 상대로 환상적인 중거리 슛으로 득점을 기록하여 맨유의 3-2 대역전승을 이끌어냈다.

국가대표 경력
2008-09 시즌 FC 스파르타크 트르나바의 감독 블라디미르 베르메조비치는 그를 세르비아 감독에게 추천하였다. 네마냐는 당시 세르비아 국가대표팀에서 생소한 이름이었다. 2008년 10월 11일, 마티치는 세르비아 U-21 대표팀에 차출되어 덴마크 U-21 대표팀과의 경기에 출전하였다.세르비아 U-21 대표팀 소속으로 3경기 출장과 2골을 기록한 그는 2008년 12월 14일, 폴란드와의 친선경기를 앞두고 세르비아 성인대표팀에 차출되었다.

마티치는 2009년 UEFA U-21 챔피언쉽에 참가하여, 이탈리아와의 첫 조별리그 경기 (0-0) 에서 85분 출장하였다. 마티치는 이탈리아의 세바스티안 조빈코와 충돌하여 부상당하였다. 그는 오른발의 5번째 중족골 골절로 수술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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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 린가드

I LOVE SOCCER 2019. 4. 24. 16:49

제시 린가드

 

안녕하세요! 오늘은 제시 황가드 라는 별명을 갖고있는 잉글랜드 국가대표이자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활약중인 제시 린가드 선수에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름 제시 린가드 Jesse Lingard Jesse Ellis Lingard
출생일 1992년 12월 15일
출생지 잉글랜드, 체셔주, 워링턴
175 cm
포지션 미드필더
현 소속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등번호 14
청소년 클럽 기록 -2000  펜케스 유나이티드 
2000-2011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클럽 기록 2011-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2012-2013   레스터 시티 (임대)
2013-2014  버밍엄 시티 (임대) 
2014  브라이턴 & 호브 앨비언 (임대) 
2015 더비 카운티 (임대)
국가대표팀 기록 잉글랜드 22경기 4득점

 

 

제시 엘리스 린가드(영어: Jesse Ellis Lingard, 1992년 12월 15일 ~ )는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로, 현재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미드필더로 뛰고 있다.

2012년에 그는 레스터 시티로 임대 이적을 하였고, 2013년에는 버밍엄 시티로 임대 이적 하였다. 또 그는 잉글랜드 청소년 국가대표로 뛴 경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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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안녕하세요!  오늘은 한때 박지성 선수의 소속팀으로 국민구단이었던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전체 이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축구단
Manchester United Football Club
별칭 The Red
설립 연도 1878년 뉴턴 히스 LYR FC로 창단
경기장 올드 트래퍼드
수용 인원 75,653명
구단주 글레이저 가문
회장 조엘 글레이저, 에이브럼 글레이저
감독 올레 군나르 솔샤르
리그 프리미어리그
2017-2018 시즌 순위 2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풋볼 클럽(영어: Manchesthair United Football Club,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축구단)은 잉글랜드 맨체스터에 있는 잉글랜드 프로 축구 구단이다. 1964-65 시즌 이래 단 1번의 시즌을 제외하고는 잉글랜드에서 최다 평균 관중 기록을 차지해왔다. 프리미어리그 개편 당시 원년 구단이었으며 현재까지 계속 소속해 있다.

구단은 1878년 랭커셔 요크셔 철도의 뉴턴 히스 지부 실업팀인 뉴턴 히스 LYR FC(Newton Heath LYR F.C.)로 설립되었고, 1902년 4월 26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로 개명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는 2010-11 시즌 프리미어리그 우승으로 잉글랜드 프로축구 역사상 19번째 1부 프로축구리그 우승을 기록해, 기존에 리버풀 FC가 갖고 있던 기록과 같은 기록을 경신했다. 구단은 1991-92 시즌부터 2012-13 시즌까지 단 한 차례도 3위 아래의 순위로 시즌을 마친 적이 없을 정도로 프리미어리그 출범 이래 꾸준한 성적을 거두어왔다. 또한 구단은 잉글랜드 FA컵에서 총 12회 우승하여 아스널 FC 다음으로 많은 우승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1968년에는 에우제비오의 벤피카를 꺾고 잉글랜드 축구단으로는 최초로 유러피언컵을 들어올렸다.[1] 1999년에는 바이에른 뮌헨과의 결승전에서 나온 극적인 역전승으로 두 번째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이 해 UEFA 챔피언스리그, 프리미어리그, 잉글랜드 FA컵 3개의 주요 타이틀을 석권하여 이른바 트레블을 달성하였다.

1990년대 후반 이래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는 가장 부유한 구단 가운데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며, 근래에는 전 세계 축구단 가운데 최고의 수입 기록을 지속적으로 기록해 왔다. 유럽의 저명한 프로축구단들의 모임인 G-14의 회원이기도 하며,[2] 2007년 포브스의 세계 스포츠 구단 평가에서는 14억 5300만 달러의 평가를 받아 전 세계 축구단 중에서 1위를 기록했다.[3] 그리고 구단은 2017년 1월 19일(한국 시각) 2015-16 시즌에 6억 8,900만유로(약 8,620억원)의 매출을 기록하여, 11년 연속 연간수익 1위를 달성한 레알 마드리드를 제치고 연간수익 1위에 등극했다. 그리고, 2017년 7월 13일(한국시각)에 36억 9,000만 달러(약 4조 2,176억원)의 구단 가치를 기록해 최고의 가치를 지닌 축구 클럽으로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2018년 5월 23일(한국 시간)에 글로벌 회계·컨설팅 회사인 KPMG로부터 지난해보다 5% 상승한 32억 유로(약 4조871억원)로 레알 마드리드(29억 유로)와 FC 바르셀로나(28억 유로)를 제치고 유럽에서 가장 비싼 클럽으로 선정되었다.

현재 감독은 올레 군나르 솔셰르이고, 주장은 안토니오 발렌시아고 부주장은 애슐리 영이다.


황유의 역사는 1878년 랭커셔 요크셔 철도의 뉴턴 히스 지부 실업팀인 뉴턴 히스 LYR F.C.(Newton Heath LYR F.C.)의 설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4] 유니폼은 지금과는 달리 녹색과 노란색을 좌우 대칭으로 넣은 유니폼이었다. 1892년 철도 지부와의 관련을 끊고 “Newton Heath F.C.”로 명칭을 변경, 독립적인 클럽으로 변모하였고, 풋볼 리그(The Football League)에도 참가하였다. 1902년 2500파운드의 부채로 인해 클럽이 위기에 빠졌는데, J. H. 데이비스의 투자로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당시 클럽의 주장인 해리 스태퍼드가 그의 애견 세인트버나드를 기금 모금 행사에서 자랑했고 데이비스는 개를 사기 위해 스태퍼드에게 접근했다. 그러나 클럽의 주장은 제안을 거절했고 대신 데이비스가 클럽에 투자하기를 설득했다고 한다. 한편, 클럽의 명칭과 관련하여 “맨체스터 센트럴(Manchester Central)”과 “맨체스터 셀틱(Manchester Celtic)”이 제안되기도 했는데, 이탈리아계 후손인 루이스 로카(Louis Rocca)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제안해 그것으로 결정되었다. 1902년 4월 26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의 개명이 확정되었다. 데이비스는 기존 유니폼의 색인 녹색과 금색 대신에 붉은색과 흰색으로 바꾸었다.[출처 필요]

1902년 9월 28일 제임스 웨스트가 감독직을 사임한 이후 어니스트 만그날이 사무장으로 임명되었고 1부 리그로 팀을 승격시킬 임무를 맡게 되었다. 첫 시도는 디비전 2의 5위로 그쳤다. 만그날은 클럽에 새 얼굴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렸고 해리 모거와 딕 더크워스, 존 피켄 등을 영입했고 400파운드를 들여 찰리 로버츠를 데리고 왔다. 결국 2부 리그 1905-06 시즌에서 2위를 차지하여 1부 리그로 마침내 승격하였다. 1908년에는 클럽 역사상 최초로 우승을 차지하였다. 그리고 다음해 FA컵을 최초로 우승하였다. 1910-11 시즌을 우승하였고 그 와중에 올드 트래퍼드로 홈구장을 이전하였다. 1910년 2월 19일 리버풀 FC를 상대로 올드 트래퍼드에서의 첫 경기를 치렀다. 1922년에는 2부 리그로 강등되는 일을 겪기도 하였는데 1925년에 1부 리그에 복귀하였다. 그러나 다시 1931년에는 강등하는 등 요요 클럽(승격과 강등을 반복하는 팀)으로 불리기도 했다. 1938-39 시즌에서 14위를 차지한 이래로 1부 리그에 안정적으로 머물기 시작했다.

1945-1969 (버즈비 시대)
1945년 맷 버즈비가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그는 등장하면서부터 자신의 선수 선발권 및 선수 이적, 훈련 방법 등에서의 권한을 요구하였다(그가 바로 직전에 머물렀던 리버풀에서는 이런 요구가 묵살되고 해임되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그의 주장에 동의하고 그에게 권한을 맡기었다. 버즈비가 성사시킨 첫 계약은 선수가 아니라 수석 코치 지미 머피였다. 1947, 48, 49년 2위를 차지하고 1948년에는 FA컵을 우승하는 등 상당한 성적을 거두었다. 버즈비는 클럽이 육성하고 있는 유스 팀 선수들에 주목했고 1956년에 팀 평균 나이가 불과 22세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시즌 103골로 리그 우승을 차지하였다. 어린 선수를 중용하는 정책은 클럽 역사의 전환점을 가져다주었고 이 선수들을 ‘버즈비의 아이들’(Busby Babes)이라고 불렀다.[6] 버즈비는 버즈비의 아이들과 함께 공격 축구로 맨체스터의 팬층을 확고하게 구축했다.[7]

1958년 2월 6일 뮌헨 비행기 참사가 발생했다. 유고슬라비아 베오그라드에서 열린 유러피언 컵 준결승행을 확정하고 귀국하던 선수단을 태운 비행기가 중간지 뮌헨에서 연료 공급을 받고 이륙을 하는 도중 이륙 실패로 공항의 경계벽과 충돌하였다. 이 사고로 선수 8명과 코칭스태프를 포함해 총 15명이 사망하였다. 2번의 이륙 시도가 이미 있었고, 3번째 시도에서 이륙에 필요한 충분한 속력을 내지 못해 이륙에 실패했다. 버즈비 감독도 비행기에 탑승하여 심각한 부상을 입었으나 구조되었다. 7명의 선수는 사고 당시 사망했고, 중상을 입은 선수 한 명은 2주일 후에 병원에서 사망했다.[출처 필요]

사고 이후 유러피언 컵을 포기할 것이라는 루머가 나돌았지만, 부상 중인 버즈비를 대신해 지미 머피가 임시 감독직을 맡고 대회에 계속 참가하였다. 참사에도 불구하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FA컵 결승전까지 올랐다. 1960년대 초반을 거치면서 버즈비가 다시 팀을 정비하였고 데니스 로 등을 영입하고 젊은 선수 육성에 주력했다. 그 결과로 조지 베스트라는 맨체스터의 영웅을 탄생시켰다.[9] 1963년 FA컵을 들어 올렸으며, 1964년 시즌에는 2위로 시즌을 마감하였다. 1965년과 1967년에는 리그 우승을 달성하였으며, 1968년에는 벤피카를 4:1로 꺾고 드디어 유러피언 컵을 들어 올렸다.[10] 이는 뮌헨 비행기 사고 10년째가 되는 해였고 잉글랜드 클럽 사상 최초로 해당 대회를 우승하였다. 1960년대의 버즈비 시대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유럽 올해의 선수(발롱도르)를 3명이나 배출하는 기록을 올렸다. 1964년에는 데니스 로, 1966년에는 보비 찰턴, 1968년에는 조지 베스트[11] 가 수상자였다. 1969년 버즈비는 감독직에서 물러났고 리저브팀 감독이자 전 맨유 선수였던 윌프 맥기니스가 감독직에 올랐다.

1969-1986
버즈비의 시대는 뒤로하고, 새로운 감독 윌프 맥기니스 체제에서 1969-70 시즌에 실망스럽게 8위에 머물렀고 1970-71 시즌에는 실망스러운 시즌 초반 성적으로 결국 리저브팀으로 다시 돌아가야 했다. 사임했던 버즈비가 6개월간 팀을 잠깐 맡았는데 결국 1971년 여름에 그는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셀틱을 유러피언 컵 정상에 올려놓은 존 스타인(Jock Stein)이 새로운 감독으로 취임할 뻔했으나 계약 성사 직전에 그의 포기 의사로 결국 프랭크 오패럴(Frank O'Farrell)이 감독직에 올랐다. 하지만 18개월도 채우지 못하고 1972년에 토미 도허티(Tommy Docherty)가 그의 뒤를 이었다. 도허티는 팀을 강등 위기에서 구했으나, 1974년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결국 강등되었다. 이 무렵에 골든 트리오라고 불렸던 조지 베스트와 데니스 로, 보비 찰턴이 팀을 떠났다.[출처 필요])

강등 직후 다음 시즌에 곧장 1부 리그로 복귀하였으며, 스티브 코펠(Steve Coppell)이 이 시즌 막바지에 데뷔하였고 FA컵 준우승을 차지했다. 1977년에는 리버풀을 2:1로 꺾고 FA컵을 들어 올렸다. 도허티의 이와 같은 성공과 대중적 인기에도 불구하고 불륜 사건에 휘말려 해임되었다. 데이브 섹튼(Dave Sexton)이 1977년 여름에 그의 자리를 이었고 수비적인 전술을 구사하였다. 이 때문에 그는 버즈비와 도허티의 공격 전술을 선호했던 서포터들로부터 인기를 잃었고 우승에는 못 미치는 성적으로, 해임 직전의 7연승에도 불구하고 1981년에 감독직에서 물러나야 했고 론 앳킨슨(Ron Atkinson)이 감독 자리에 올랐고 웨스트 브롬에서 브라이언 롭슨(Bryan Robson)을 당시 잉글랜드 이적료 기록을 깨면서까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데리고 왔다. 이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1983년, 1985년 FA컵을 차지하였다. 그러나 1985-86 시즌 리그 초반 10연승에도 불구하고 우승을 리버풀에 내주고 말았고 다음 시즌에는 실망스러운 성적으로 강등의 위기에 처하기도 했었다. 결국 앳킨스는 성적 부진의 책임으로 해임되었다.[출처 필요])

1986-2013 (알렉스 퍼거슨 시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의 역사 (1986-2013)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013-현재
알렉스 퍼거슨이 2012-13 시즌을 끝으로 감독직에서 물러난 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다음날 퍼거슨 감독의 뒤를 이어 11년 간 에버튼을 이끈 데이비드 모이스 감독과 6년 계약을 맺었으며 7월 1일부터 퍼거슨 경을 대신해 감독직을 수행하게 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모예스 부임 이후 프리미어리그 타이틀 방어에 실패하고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이 주어지는 4위안에 들지 못하며 1995-96년 이후 처음으로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본선 진출 자격을 얻지 못하는 부진한 모습을 보이자 2014년 4월 22일, 결국 모예스가 전격 경질되었으며 모예스의 뒤를 이어 팀의 레전드 라이언 긱스가 임시 감독으로 부임했으며 선수생활도 같이 병행하게 되었다. 그러나 맨유는 리그를 7위로 마감하며 유로파 리그에 진출하는데에도 실패하게 되었는데, 이는 1990년 이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처음으로 유럽 대회에 출전하지 못한 것이였다. 2014년 5월 19일, 경질된 데이비드 모예스와 임시 감독인 라이언 긱스의 뒤를 이어 네덜란드 대표팀 감독 출신의 루이 판 할이 3년 계약을 맺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으로 선임되었으며, 임시 감독이였던 라이언 긱스를 팀의 수석코치로 임명하였다.

판 할의 부임 첫 시즌을 앞두고 맨유는 안데르 에레라, 루크 쇼, 디 마리아, 라다멜 팔카오 등 대규모의 선수들을 영입하며 시즌을 준비하였고, 결국 프리미어리그에서 4위를 기록하면서 1시즌 만에 챔피언스리그에 다시 복귀하게 된다, 그러나 반 할의 두 번째 시즌, 멤피스 데파이, 슈나이덜린, 슈바인슈타이거 등 지난 시즌과 마찬가지로 상당한 금액으로 많은 선수들을 영입했음에도 불구하고 부진한 경기력을 보이면서 5위로 시즌을 마치며 3시즌 연속 우승 경쟁에서 밀렸으며 1시즌 만에 복귀한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조별리그에서 탈락하게 된다. 하지만 FA컵에서 크리스털 팰리스를 꺾고 12년 만에 FA컵 우승 트로피를 차지하며, 알렉스 퍼거슨 경의 은퇴 이후 팀의 첫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퍼거슨 경 은퇴 이후 처음으로 우승을 차지함에도 불구하고 결국 판 할은 맨유 감독직에서 해임되었으며 2016년 5월 27일. 첼시, 인테르, 레알 마드리드 등에서 수많은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린 조세 무리뉴가 구단과 3년 계약을 맺으면서 감독을 맡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지휘하였다.

무리뉴가 맨유 감독으로 부임한 첫 해 리그에선 6위를 기록하였지만 FA 커뮤니티 실드, 유로파리그, EFL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유로파리그 우승을 차지함으로서 챔피언스리그 본선에도 진출하게 된다. 이 시즌 웨인 루니는 맨유에서 통산 250호 골을 터뜨려 바비 찰턴경을 제치고 맨유의 역대 득점 1위에 올랐으며 시즌이 끝난 뒤 팀을 떠나 친정팀인 에버튼으로 복귀하였다. 2017-18 시즌을 앞두고 맨유는 로멜루 루카쿠, 네마냐 마티치, 빅토르 린델로프 등을 영입하며 전력을 보강하였고 부임하는 팀마다 2년차에 반드시 우승을 차지하는 무리뉴 감독의 징크스 덕분에 많은 기대를 않고 시즌에 들어갔다. 하지만 막강한 자금력과 펩 과르디올라 감독의 지도력을 앞세운 지역 라이벌 맨체스터 시티의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인해 리그 2위를 기록하였고,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세비야에게 16강에서 탈락하면서 모리뉴 감독 데뷔 이후 2년차 시즌 중 가장 아쉬운 성적을 남기게 된다.

그리고, 18-19 시즌, 선수 영입과정에서 발생한 무리뉴와 구단 보드진과의 갈등으로 인해 시즌 시작 전부터 잡음이 일기 시작하더니 시즌 개막 후 2018년 8월 28일(한국시간 새벽)에 있었던 토트넘과의 리그 3라운드 홈 경기에서 0-3 대패를 당해 홈 경기 역사상 굴욕적인 3골 차 패배를 당해 불안한 출발을 보였지만, 이후, 리그와 챔피언스리그를 포함하여 3연승을 내달렸다. 그리고, 2018년 9월 22일(한국시간 밤 11시)에 있었던 울버햄튼과의 홈 경기에서 프레드가 맨유 소속 데뷔골을 기록하며 클럽 통산 500번째 득점자로 이름을 남겼지만 1-1 아쉬운 무승부를 기하였다. 하지만, 2018년 9월 26일(한국시각 새벽)에 있었던 카라바오 컵 경기에서 과거 무리뉴 제자였던 프랭크 램파드가 감독으로 이끄는 더비 카운티에게 승부차기에서 7-8로 패하여 자존심을 구겼다. 그 후로 무리뉴와 선수들의 불화설, 내부분열 등 잡음으로 끊이지 않았던 맨유는 챔피언스리그를 포함한 4경기 동안 승리를 거두지 못하다가, 2018년 10월 7일 새벽 1시 30분(한국 시간) 영국 맨체스터 올드 트래포드에서 열린 뉴캐슬과의 리그 홈 경기에서 3-2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었다. 이 날 무리뉴는 커리어 통산 400승 고지에 올랐다. 그 이후, 불화설과 내부 분열 등 잡음을 수습한 맨유는 최근 들어 역전승을 많이 거두어 리그와 챔피언스리그에서 무패를 달렸으며, 챔피언스리그에선 H조 2위로 16강 진출에 성공하였다. 하지만 그 후에도 불화설과 성적 부진을 거듭하였고 결국 12월 17일에 열린 선두 리버풀과의 더비 매치 홈경기에서 경기 내용까지 밀리며 3:1로 패하면서 리그 선두 리버풀에 19점 차로 밀리게 되자, 구단 수뇌부들은 2018년 12월 18일(한국시간)에 무리뉴를 경질함으로써 맹구와 느그바의 정치질이 극치를 이루던 무리뉴 시대는 막을 내렸다.

그 후, 새로운 정식 감독을 찾을 때까지 맨유의 레전드 공격수이자 노르웨이의 몰데 FK의 감독인 솔셰르가 임시 감독을 맡아 남은 시즌을 치르기로 하였지만, 솔샤르가 부임한 이래 17경기 동안 14승 2무 1패를 기록하는 호성적에다 2019년 3월 7일(한국시간 새벽)에 있었던 파리 생제르맹과의 2차전 경기에서 3-1 승리를 거둬 원정 다득점 원칙으로 5시즌 만에 8강에 오르는 파리의 기적을 선보여 2019년 3월 28일(한국시간)에 맨유의 정식 감독으로 승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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