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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즈 마튀디

I LOVE SOCCER 2019. 4. 27. 11:58

블레즈 마튀디

 

안녕하세요! 오늘은 유벤투스의 중앙 미드필더이자 프랑스 국가대표팀의 중원에 한 축을 맡고있는 블레즈 마튀디 선수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름 블레즈 마튀디 Blaise Matuidi
출생일 1987년 4월 9일
출생지 프랑스 툴루즈
180 ㎝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
현 소속팀 유벤투스
등번호 14
청소년 클럽 기록 1993-1998  US 퐁트네-수-부아 
1998-2001  CO 뱅세누아 
2000-2003  INF 클레르퐁텐 
2001-2004  크레테유 
2004-2005 트루아
클럽 기록 2004-2007  트루아 
2007-2011  생테티엔 
2011-2017  파리 생제르맹 
2017- 유벤투스
국가대표팀 기록 프랑스 62경기 9득점

 

 

 

블레즈 마튀디 (프랑스어: Blaise Matuidi, 1987년 4월 9일, 툴루즈 ~) 는 프랑스의 축구선수로, 현재 세리에 A의 유벤투스와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중앙 미드필더로 활약하고 있다. 그는 "날카롭고 강력한 태클러"로 묘사된다

마투이디는 US 퐁트네-수-부아나 CO 뱅세누아와 같은 일-드-프랑스 레지옹의 아마추어 클럽들을 거치며 축구를 시작하였다. 1999년, 그는 클레르퐁텐 아카데미에 들어갔다. 클라르퐁텐을 떠난 후, 마투이디는 반 프로구단인 크레텔에 입단하여 청소년 아카데미에서 3년간 성장하였다. 2004년, 그는 프로구단 트루아와 계약하고 2004-05 시즌에 프로무대에 데뷔하였다. 트루아에서의 3시즌 이후, 마투이디는 생테티엔으로 이적하였다. 생테티엔에서, 그는 2008-09 시즌의 UEFA컵에 참가하며 유럽대항전에 처음으로 출전하였다. 2009-10 시즌, 그는 알랭 페랭 감독에 의해 주장으로 선정되었다. 2011년 7월, 생테티엔에서의 4시즌 이후, 마투이디는 파리 생제르맹과 3년 계약을 체결하며 이적하였다.

마투이디는 전 프랑스 청소년 국가대표로, U-19 대표와 U-21 국가대표로 출전한 기록이 있다. 2010년 8월, 마투이디는 로랑 블랑 신임 감독에 의해 성인 국가대표팀에 처음으로 차출되었다. 그는 2010년 9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와의 UEFA 유로 2012 예선전에서 국가대표팀 신고식을 치르었다.

2017년 여름 유벤투스초기 경력
마투이디는 오트-가론의 툴루즈에서, 앙골라계 아버지 파리아 리벨리노와 콩고 공화국계 프랑스인 어머니 엘리제 사이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 리벨리노는 유년 시절에 프랑스로 이민하였다. 마투이디는 4명의 남매가 있는데, 같이 파리 근교의 퐁트네-수-부아에서 성장하였다. 그는 파리 생제르맹의 경기를 보며 축구에 빠지게 되었고, 전 PSG 공격수 제이제이 오코차의 존경자가 되었다. 마투이디는 6세가 되었을 때, 집 근처의 US 퐁트네-수-부아에 입단하며 축구에 입문하였다. 클럽에서의 5년 후, 그는 인근의 뱅센에 위치한 CO 뱅세누아에 합류하였고, 그곳에서 그는 팀 동료 야신 브라이미를 만났다. 1999년, 마투이디는 일-드-프랑스의 최고 선수들 중 하나로 평가되었고, 이후 명성 높은 INF 클라르퐁텐 아카데미에 들어갔다. 그는 아카데미에서 3시즌 간 훈련을 받았으며, 주중에서 이곳에서 활약하면서 동시에 주말에는 뱅센에서 활약하였다. 2001년, 마투이디는 뱅센을 떠나 반 프로구단 크레텔과 청소년 계약을 체결하였다. 그는 4년을 이 클럽의 유소년 아카데미에서 활약하며 성장하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클럽의 가장 선망스러운 대상이 되었다. 두 차례 우승을 거둔 리옹의 제의에도 불구하고, 마투이디는 트루아와 계약하였고, 클럽의 훈련 센터를 그의 이적 요인으로 삼았다.

트루아
마투이디는 프랑스 축구 5부 리그인, 샹피오나 드 프랑스 아마퇴르 2에 위치한 클럽의 리저브 팀에서 트루아 선수로 데뷔하였다. 2004년 11월, 그는 장-마르크 풀란 감독에 의해 1군으로 승격되었고, 11월 23일, 뇌뇽과의 리그 2 경기에서 프로무대에 첫 발을 내딛었다. 마투이디는 2-1로 이긴 이 경기에서 선발로 출전하여 60분을 활약하였다. 2005년 2월 3일, 그는 갱강과의 리그 경기에서 유일한 1군 출전을 기록하였다. 마투이디는 이후 시즌 잔여 기간동안 클럽의 리저브 팀으로 강등되었고, 그는 팀이 용납할 만한 6위를 거두게 했다. 다음 시즌, 마투이디는 리그 1로 승격된 1군에 영구적으로 재승격되었다. 그는 풀란 감독에 의해 주전으로 기용되어 31경기에 출전하였다. 마투이디는 11장으로 리그에서 가장 많은 카드를 수집한 선수들 중 한명이었다. 그는 2006년 1월 11일, 릴전에서 언론에게 "환상적이다." 라고 칭찬받은 발리슛으로 첫 프로리그 득점에 성공하였고, 팀은 1-0으로 이겼다. 개인적으로 인상적인 시즌을 보낸 것과는 대조되게, 트루아는 17위로 강등을 간신히 면하였다.

2006년 6월 16일, 시즌 종료 후, 마투이디는 잉글랜드 클럽 찰턴 애슬레틱의 관심에도 불구하고 트루아와 4년 계약이라는 첫 프로 계약을 체결하였다. 풀란 감독의 해임에도 불구하고, 마투이디는 드니 트로슈 신임 감독 하에 주전 자리를 유지하였다. 그는 총 35경기에 출전하여 3골을 득점하였다. 그는 수집한 카드 숫자를 6개까지 줄였다. 논란의 여지없이, 마투이디가 트루아 유니폼을 입고 최고의 활약을 펼친 때는 2007년 4월 28일, 스당전이었고, 트루아는 이 경기에서 상대팀과 리그 잔류를 놓고 경기에 임했다. 15분이 남은 상황에서 트루아가 1-2로 끌려가고 있을 때, 마투이디는 동점골을 삽입하였다. 8분 후, 그는 또다시 득점하여 트루아에게 3-2 역전승을 가져다 주었다. 마투이디는 3-0으로 이긴 랑스와의 리그 최종전에서도 득점을 성공하였으나, 트루아는 18위에 머무르며 리그 2 강등이 확정되었다. 클럽의 리그 2 강등으로 마투이디가 클럽과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한 추측이 난무하였다.

생테티엔
보르도, 릴, 그리고 모나코 등의 리그 1의 여러 클럽과 연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2007년 6월 12일에 언론은 마튀디가 생테티엔과 4년 계약을 체결하고 합류하기로 합의를 보았다고 보도하였다. 그는 도착 후, 12번이 새겨진 유니폼을 받았고, 즉시 선발 라인업에 포함되었으며, 로이크 페랭, 크리스토프 랑드랭과 중원에서 협동 관계를 나타냈다. 그는 탈출을 감행한 전 트루아인 동료 바페팀비 고미스와 좋은 조합을 이루었다. 마투이디는 2007년 8월 11일, 발랑시엔과의 리그 경기에서 새팀 데뷔전을 치르었다 그는 로랑 루세 감독의 지도 하에 쭉 주전으로 활약하였다. 클럽은 이 시즌에 준수한 5위의 성적을 내며 UEFA컵 진출권을 획득하였다.

2008-09 시즌, 마투이디의 활약은 잉글랜드 클럽 아스널의 주목을 받았고, 질 그리망디 스카우트가 그를 주시하기 위해 찾아오기도 했다. 그리망디는 동료 프랑스인이자 아스널 감독인 아르센 벵어 감독에게 그를 추천하였다. 마투이디는 시즌 도중 이탈리아 클럽 밀란의 관심도 받았다. 2008년 8월 16일, 그는 2-1로 이긴 소쇼전에서 생테티엔 1호골을 득점하였다.2008년 9월 18일, 마투이디는 이스라엘클럽 하포엘 텔아비브와의 UEFA컵 1라운드 1차전에서 유럽대항전에 처음으로 출전하였다. 그는 생테티엔 소속으로 8경기 출장하였고, 팀은 독일 클럽 베르더 브레멘과의 16강전에서 멈췄다. 마투이디는 0-3으로 패한 릴전에서 생테티엔 레드카드 1호를 받기 전까지 꾸준히 리그에 출전하였다. 시즌 후반기에 마투이디와 클럽은 대체로 부상으로 문제를 겪었다. 팀의 와해는 생테티엔이 리그 최종일에 강등을 간신히 피하는 것으로 끝났다. 시즌 종료 후, 마투이디는 레키프 프랑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클럽을 떠날 의사를 밝혔다, "저는 지금이 적기라고 생각하므로 제 소원은 떠나는 것입니다." 마투이디는 생테티엔에 잔류해도 행복할 것이라고 덧붙여 진술했다. 2009년 여름에 특별한 제의를 받지 못한 후, 다미앙 코몰리 스포르팅 디렉터는 마투이디가 2009-10 시즌에도 클럽에 잔류할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마투이디는 2009-10 시즌의 리그 첫 경기에서 현 주장 로이크 페랭이 부상당하자, 알랭 페랭 신임 감독에 의해 클럽의 새 정주장으로 선정되었다. 페랭이 2009년 9월에 팀에 돌아왔음에도 불구하고, 마튀디가 여전히 주장 완장을 가져갔다. 그의 리더쉽 하에, 생테티엔은 디펜딩 챔피언 보르도를 2009년 10월 3일에 꺾었다. 시즌 도중 페랭 감독이 경질되자, 크리스토프 갈티에르 신임 감독은 주장 완장을 로이크 페랭에게 다시 돌려주었다. 2010년 5월 18일, 마투이디는 0-1로 진 툴루즈와의 경기에서 팀 동료 디미트리 파예트와의 물리적 충돌이 있었다. 전반전 중간에 파예는 팀 동료 요안 베날루안로부터 공격 성향의 부족에 대해 비난하였다. 그는 이후 그는 베날루안의 정서가 반복되게 느껴지자 마투이디와 싸움을 벌였다. 마투이디와 파예는 머리를 맞대었고 후자의 선수는 마투이디의 머리를 가격하다가 브루노 쿠에 주심과 팀 동료로부터 둘 간의 사이를 갈라놓았다. 이 사태의 결과로, 파예는 31분에 교체되어 나갔고, 롤랑 로메유 클럽 회장에 의해 징계가 내려졌다. 2010년 10월 6일, 마투이디와 파예가 모두 프랑스 국가대표팀에 차출된 후, 마투이디는 이 싸움을 두 선수에게 모두 "성숙함의 부족"이라고 묘사하였고, 파예는 이 사태에 대해 "무의미한 논쟁"이라 하며 "이미 설명이 끝나고 이제는 잊혀진 사건."이라고 묘사하였다.

파리 생제르맹
2011년 7월 25일, 프랑스 클럽 파리 생제르맹은 마투이디가 클럽과 3년 계약을 맺었으며 현역에서 은퇴하는 클로드 마켈렐레를 대체하게 될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이적료는 비공개 처리되었으나, 약 €7.5M대에 책정되었으며 향후 인센티브가 추가될 수 있다고 보고되었다. 마투이디는 동료 신입생이자 국가대표팀 동료 제레미 메네즈와 함께 언론에 같은 날 소개되었고, 등번호 14번이 배정되었다. 그는 0-1로 패한 뉴욕 레드불스와의 에미리츠컵에서 PSG 데뷔전을 치르었다. 2011년 8월 6일, 마투이디는 0-1로 패한 로리앙과의 리그 개막전에서 파리 생제르맹 공식경기에 처음 출전하였다. 2014년 2월 26일, 마투이디는 클럽과 4년 연장 계약을 체결하였다.

국가대표팀 경력
마투이디는 전 프랑스 청소년 국가대표 일원으로, U-19 국가대표팀과 U-21 국가대표팀 일원이었다. 그는 크레텔과 트루아의 청소년 국가대표팀 시절 별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였다; 그러나, 2006-07 시즌에 후자의 클럽에서 자신의 자리를 확고이 하면서, 기 페리에 감독에 의해 U-19 국가대표팀에 차출되었다. 마투이디는 2005년 10월 5일, 4-0으로 이긴 노르웨이와의 경기에서 청소년 국제경기에 처음 출전하였다. 그는 이후 2006년 UEFA U-19 축구 선수권 대회의 예선전에 출전하였다. 프랑스는 대회 본선 진출에 실패하였고, 마투이디는 예선전을 치르면서 9경기 출장 무득점을 기록하였다.

마투이디는 르네 지라르 감독에 의해 벨기에와의 2006년 UEFA U-21 축구 선수권 대회를 위해 U-21 국가대표팀에 차출되었고, 하프 타임에 지미 브리앙과 교체되어 출전하였다.그는 2007년 UEFA U-21 축구 선수권의 예선전을 위해 차출되어 충격패를 당한 이스라엘과의 두 예선 플레이오프 경기에 출전하여다. 마투이디는 나이가 차지 않아 대회 탈락 후에도 2007년, 4-0으로 이긴 스웨덴과의 경기에 출전한 많은 유망주 선수들 중 하나였다.마투이디는 2009년 UEFA U-21 축구 선수권 대회의 예선전을 포함하여 다음 10경기에 출전하였다. 2007년의 마지막 경기를 결장한 후, 그는 스페인과의 2008년 첫경기에 출전하였다. 마투이디는 잔여 예선 일정동안 팀에 만났다. 그의 U-21팀 경력은 독일과의 2009년 UEFA U-21 유럽 축구 선수권 본선행을 놓고 벌인 2차전 경기에서 패하며 끝났다.

2년 가까이 국제경기에 나가지 못한 그는, 2010년 8월 5일, 로랑 블랑 신임 감독에 의해 2010년 8월 11일에 열리는 노르웨이와의 친선경기를 위해 성인 국가대표팀에 처음 차출되었다. 그는 이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였으나, 다음 달에 벨라루스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와의 UEFA 유로 2012 예선전을 위해 부상자 대체자원으로 차울되었다. 마투이디는 2-0으로 이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전에서 교체 출전하며 국제경기 신고식을 치르었다. 2011년 3월 29일, 그는 0-0으로 비긴 크로아티아전에서 처음으로 선발 출전하였다.

2014년 3월 5일, 그는 네덜란드와의 친선경기에서 시저스 킥으로 자신의 첫 국제경기 득점을 기록하였고, 팀은 2-0 완승을 거두었다. FC로 이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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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리에 A

I LOVE SOCCER 2019. 4. 19. 13:42

세리에 A

 

안녕하세요!!

오늘은 우리형 호날두 선수의 유벤투스와

AC밀란 인터밀란 나폴리 라치오 등등

전통의 명가들이 속해있고 지금은 세리에 B로 강등되었지만 다시 세리에 A 승격을 노리는 이승우 선수의 베로나가 속했던 리그인 이탈리아 세리에 A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명칭 세리에 A
대륙 UEFA
축구협회 FIGC
주최 기관 레가 세리에 A
개최 주기 매년
시즌 시작 8월
시즌 종료 5월
하위 리그 세리에 B
대륙 대회 UEFA 챔피언스리그 , UEFA 유로파리그
국내 대회 코파 이탈리아,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설립 연도 1898년
역대 시즌수 117시즌
최다 우승팀 유벤투스 34회 우승

세리에 A(이탈리아어: Serie A)는 이탈리아의 프로축구 최상위 리그이며, 스폰서십으로 세리에 A TIM이 공식 명칭이다. 레가 나치오날레 프로페시오니스티 세리에 A에서 주관한다.

FIGC 공인 하에 1898년 대회가 첫 대회로 인정되었으며, 현재의 전국 단일 조로 구성된 리그방식은 1929년부터 시행했다. 가장 많이 우승한 구단은 34번을 우승한 유벤투스이며, 인테르는 단일 조 역사 이래로 강등의 역사가 없는 모든 시즌 참가 구단이다.

세리에 A는 UEFA 계수에 따라 3위에 올라있으며, 이는 스페인의 라리가와 잉글랜드의 프리미어리그 다음이다.


1929-30 시즌은 세리에 A 역사의 중요한 분기점으로 평가받는데, 이는 이전까지는 아마추어 리그였으며, 지역단위의 조로 구성된 리그를 전국 단일 조로 통합된 리그가 시작됐기 때문이다.순위와 대진을 결정하는데 있어서 보다 공정한 방법인 리그전으로 순위를 정하게 됐다. 리그의 구단 수 구성을 16개 혹은 18개 사이에서 바뀌고 바뀌는 과정들은 있어왔지만 이를 제외한 다른 규정의 개정은 없었고, 참가 구단 수는 2004-05 시즌부터 20개 구단으로 확장되기에 이른다 승점에 관해서는 승리를 거둘시 3점이 부여되며(1994-95 시즌 전까지는 2점 이었다), 무승부에는 1점, 패배에는 승점이 주어지지 않는다. 최종 순위 결정 시 동일 승점의 다수 구단이 있는경우 아래의 순위결정 기준이 적용된다. 적용 순서대로 상대 전적 승점, 상대 전적 득실차, 종합 골 득실차, 종합 득점 수, 제비 순이다. 과거 2005년 이전가지는 플레이오프 경기를 별도로 가지는게 관행이었다.

38 라운드까지 종료된 후 1위 구단은 스쿠데토와 챔피언스리그 진출 자격을 받는다. 리그 2~4위 팀들은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진출 자격을 부여받으며, 리그 5~6위 팀과 코파 이탈리아 우승팀은 유로파리그 진줄 자격을 받는데, 코파 이탈리아 우승팀과 5위팀은 조별리그, 6위팀은 2차 예선 진출권을 받는다. 만약 코파 이탈리아 우승팀이 리그 순위 6위권 이내에 있다면, 5, 6위 구단이 조별리그로, 7위 구단이 2차 예선으로 진출할 수 있게된다. 리그 하위 3개 팀은 세리에 B로 강등되며, 세리에 B에서 승격하는 팀들로 빈 자리를 채우게 된다.


우승 구단은 그 다음시즌 동안 자신의 유니폼에 스쿠데토를 붙일 수 있는데, 스쿠데토는 이탈리아 삼색기가 그려진 방패모양의 뱃지이며, 이는 제노아가 우승한 1924-25 시즌부터 시작됐다. 1960-61 시즌부터 우승팀은 코파 캄피오니 디탈리아라은 우승 트로피를 수여 받았으며, 이는 공식 세리에 A 트로피다.

1958년 움베르토 아녤리의 아이디어로 세리에 A에서 10번의 우승을 거둔 구단에게 특별한 별을 수여하기로 정했다. 황금색의 오각별 모양의 뱃지는 유니폼에 부착되는데, 보통 구단 로고와 함께 있는걸 볼 수 있다. 유벤투스가 1957-58 시즌으로 10번째 스쿠데토의 업적을 이룩으며 이 황금별을 가져갔는데, 이로서 유벤투스는 세계 최초로 기념 뱃지를 유니폼에 부착하는 구단이 됐다 이후로 이탈리아에서는 인테르와 밀란이 10번째 우승을 거두며 황금별을 가져갔다. 유벤투스는 이탈리아 축구계에 있어 유일하게 20, 30번의 세리에 A 우승으로 1개 이상의 별을 부착하는 구단이다.

1898년에 시작된 세리에 A는 초창기 약 20년 동안은 아마추어 구단들로 이루어져 있었고 대중의 관심이 낮았으며,[8] 이 기간동안 첫 번째 이탈리아 챔피언이 된 제노아와 프로 베르첼리가 대부분의 우승을 차지했다.이탈리아 축구 연맹(FIGC)은 리그 원년인 1898년에 조직되어 리그를 주최 및 주관했다. 1921년 축구리그 개혁을 주장한 비토리오 포초가 새로운 리그를 만들자는 '포초 계획'을 세웠고, '포초 계획' 측과 FIGC간의 협정이 불발되며 이탈리아에 2개의 리그가 공존하는 상황이 생겼다. 신생 리그의 1921-22 시즌은 이탈리아 축구 동맹(CCI)이 주관하여 세리에 A 역사상 유일하게 FIGC가 주관하지 않은 시즌이 됐다. 이듬해 '콜롬보 타협'을 통해 FIGC가 '포초 계획'을 수용하며 재결합에 성공을 한다.

1920년대 말 까지 이탈리아 축구 리그는 리그전으로 진행되는 여러개의 지역단위 조와 각 조의 승자들이 참가하는 토너먼트의 구성이었다. 하지만, 1929-30 시즌부터 '세리에 A'라는 새로운 이름과 함께, 지역단위 조의 구성을 폐지하고(1909-10시즌에 한번 시행됐던) 통합된 단일 리그전의 구성으로 개편을 하여 오늘날까지 내려오고 있다. 1930년대의 시작은 이탈리아 축구 역사에서도 그리고 사회 전반에 걸쳐 크나큰 분기점이 됐다. 최다 우승팀 유벤투스, 국제 대회 트로피 수집가 밀란, 강등의 역사가 없는 인테르 구단을 부르는 소위 '트레 그란디'(빅 3)의 새 시대가 열렸다.수 많은 팬들이 생겨났고 미디어의 주목을 받으며 사이클링을 대신하여 명실공히 축구를 이탈리아 국민 스포츠로 만들었다.

전간기와 제2차 세계 대전 전후시기에 한해서 밀라노-토리노(밀란, 인테르와 유벤투스)라는 이탈리아 축구의 패권은 볼로냐와 또다른 토리노 구단인 토리노에 의해 심심치않게 무너졌다. 이후 수십년동안 볼로냐, 토리노와 더불어 피오렌티나, 라치오, 로마, 나폴리가 간헐적으로 스쿠데토를 들어올리긴 했으나, 연패로 이어지는 일은 없었다. 로마는 1941-42시즌에 최초로 북부지방에 쏠려있던 헤게모니를 무너뜨리고 우승을 거둔 최초의 중남부 구단이라는 역사를 만들어냈다. 이보다 더 드문 위업을 남긴 구단으로는 카살레, 노베세(상기된 FIGC와 CCI의 분열로 강팀 및 인기 구단들이 CCI로 유출된 FIGC 1921-22 시즌에서 거둔 우승)가 20세기 전반에, 후반에는 칼리아리, 베로나, 삼프도리아가 있다.


잉글랜드에서 열린 1966년 FIFA 월드컵에서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의 조별예선 탈락 후 레가 나치오날레 프로페시오니스티는 해외 리그에서 외국인 선수를 영입하는 것을 전면 금지한다. 1981-82시즌에 이르러 이탈리아 축구의 순위가 역대 최하인 12위까지 떨어지고 벨기에, 소련, 동독, 체코슬로바키아와 같은 제2등급 리그로 분류되는 수모를 겪는다.1980년대 초반에 이르러 위의 금지법은 서서히 완화되기 시작한다.

역설적이게도 세리에 A는 하이테크한 훈련시스템과 외국인선수 시장 재개방으로 질적으로 향상되며 1980, 90년이되며 명성에서나 업적에서도 최고를 찍게된다.당시 세리에 A 팀은 유럽 클럽 대항전에 꾸준히 좋은 성적들을 남겼다. 특히 1989-90시즌에는 이탈리아 축구팀이 3개의 주요 UEFA 클럽 대항전을 모두 석권하는 역사적인 대업을 이룬때였다. 당시 이탈리아 리그는 수 년동안 UEFA 계수에서 1위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2000년대 후반 세리에 A는 여전히 유럽 주요 리그로 남아있지만 안개 속에 있는 상태다. 이는 배팅, 팬 및 관중의 감소,구단의 불안정한 재정 상태, 기술적 부분의 저하 등이 이유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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